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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상황판단의 지혜

[한비자]3-1 상황을 판단하는 안테나

by 고전 읽기 2023.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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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판단하는 안테나


최근 왼손잡이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든가 음식을 먹으면 아버지나 할아버지로부터 심한 꾸중을 들었다. 이와 같은 부모의 관심으로 어릴 때에 왼손잡이는 많이 교정되고 어른이 된 뒤에는 왼손잡이가 드물었다. 이는 오른손을 사용해야 힘을 많이 쓸 수 있고, 물건을 잘 잡을 수 있다는 등, 오른손의 운동능력이 우수하다는 효용신앙(勅用信仰)의 문화가 만들어낸 습관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왼손잡이가 의외로 많다. 프로 야구가 생겨나면서 왼손잡이 투수나 왼손잡이 타자가 크게 활약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 때에도 왼손잡이 탁구선수가 맹활약을 했다. 이처럼 이제는 왼손잡이가 흉이 되지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장려까지 하고 있다.


그러므로 왼손잡이에게는 그들이 왼손잡이가 흉이 되던 상황에서 정당하다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走 라는 한자(漢字)는 ‘달린다’는 의미의 글자이다. 한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부터 이런 뜻으로 들어왔으며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이 글자는 '달린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현대의 중국어에서는 '走'는 '걸어서 이동한다’는 의미이며, ‘달린다'는 뜻이 아니다. 아마도 오랜 옛날 '走'를 '걸어서 이동한다'라고 풀이한 어떤 침입자들에 의하여 '走'를 '달린다'라고 풀이한 사람들이 동화되어 갔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불확실 미래형인 '인 것 같다’가 확실형인 ‘이다'로 사용되고 있다. 젊은이들을 잡고 질문을 하면 한결같이 그 대답의 꼬리에 '… 인 것 같아요'다. 밥을 먹었다고 대답할 때도 '밥을 먹은 것 같아요'이다. 나이 든 사람들이 아무리 고쳐주려 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필사적으로 '… 인 것 같아요’이다. 너무 불확실한 세상에 살다 보니까 이렇게 언어까지 불확실해진 것일까.


이와 같이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문화적인 것, 사회적인 것, 정치적인 것, 경제적인 것…, 이 모든 것의 상황이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상황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수직적(垂直的)으로 변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횡적(橫的)으로도 위치의 이동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이 상황의 끊임없는 변화를 지금으로부터 2천 3백년 전에 살았던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나라는 반드시 언제나 강한 것이 아니다. 또한 언제나 약한 상태로 있는 것도 아니다. 법(法)을 받드는 자가 단호하게 시행하면 나라는 강해진다.


법을 받드는 자가 주저하고 멈칫거리며 단호하게 일을 행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약해진다.


옛날 초(楚)나라의 장왕(莊王)은 26개국을 병합하고 3천 리의 영토를 개척했다. 그러나 장왕이 죽자, 초나라는 얼마 후에 멸망하고 말았다.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은 30개의 나라를 병합하여 3천리의 영토를 개척했다. 그러나 환공이 죽자 제나라는 오래지 않아 멸망하고 말았다.


연(燕)나라의 양왕(王)은 국경을 황하(黃河)까지 넓혀 계(薊)를 수도로 정하고 탁(※)과 방성(方城)을 전초기지로 하여 제나라를 격파하고 중산(中山)을 평정했다. 연나라의 지지를 받은 나라는 중하게 대접받았고, 연나라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나라는 경하게 대접받았다. 그러나 양왕이 죽자연나라도 오래지 않아 멸망하고 말았다.

위(魏)나라의 안리왕(安王)은 조나라를 지원하여 연나라를 공격, 황하동쪽의 옛 영토를 탈환했다. 진나라가 점령하고 있던 정도(定陶)를 빼앗고 위(衛)나라를 멸망시켰다.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의 5대 도시의 하나인 평륙(平陸)을 점령하였다. 한(韓)나라를 공격하여 관(管)을 탈취하고 기수(淇水) 근처에서 크게 승리했다. 수양(睡陽)의 싸움에서는 피곤하여 지친 초나라의 대군을 궤주 시켰고, 초나라 영내인 채(蔡)와 소능(召陵)의 싸움에서는 초군을 대패시켰다. 위(魏)의 군대는 세계의 모든 곳에 손을 뻗치고 그 위세는 중원(中原)의 모든 나라에 떨쳤다. 그러나 안리왕이 죽자 위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멸망해 버렸다.


성자필멸(盛者必滅~성한 자는 반드시 망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 영고성쇠(榮枯盛衰~인간은 성하기도 하고 쇠하기도 한다)는 세상의 질서라고 말한다. 고도의 문명과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그리스가 멸망하고, 로마가 멸망하고, 페르시아가 멸망하고, 잉카 제국이 멸망했다. 현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세계 곳곳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는 강력한 미국도 먼 앞날에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상황(狀況)이란 이처럼 냉혹하고 인정 사정없이 변화해 가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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