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2-12 결과보다는 과정
결과보다는 과정
항상 어떤 행위를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운명 지워진 인간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끊임없이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결단을 내리는 행위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단을 내린 뒤의 상항의 전개는 결단을 내리는 시점에서는 여러 가지로 예측할 수는 있어도 명확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그 결단의 시비를 따지는 것은 언제나 결과를 보고 난 뒤의 일이다. 이와 같은 결과론(結果論)은 결단을 내리는 당사자의 행위와는 상관이 없다. 그리고 이 결과론에는 기적적으로 어떤 놀라운 행운이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라는 근성이 섞여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는 크던 작던 복권당첨을 바라는 것과 같은 요행을 기대하는 심정이 감추어져 있다. 그리하여 우물쭈물 결단을 지연시키는 동안에 저절로 일이 잘 풀리는 경우도, 마치 복권이 당첨되는 정도의 확률로 어쩌다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에 언제나 그런 경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현실도피이며 책임을 포기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람은 결과를 예견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이렇게 결단을 내릴 경우와 저렇게 결단을 내릴 경우의 결과를 엄밀하게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결과론에 사로잡히지 말고, 결과론을 무시한 채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 어떤 형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선택하여 결단을 내림으로써 사람은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생각, 즉 될 수만 있으면 어려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은밀한 원망(願望)을 극복하고 현실에 뛰어들 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미리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무엇이든 성취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비자의 말처럼 '일을 행하여 아무 잘못이 없다는 것은 요(堯)와 같은 훌륭한 사람도 불가능하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결단을 내리든지 후회는 피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진나라의 소양왕처럼 후회하는 일이 적은 쪽을 선택하라고 한비자는 강조하고 있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