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상황판단의 지혜

[한비자] 3-4 '화씨의 구슬'이 주는 교훈

고전 읽기 2023. 3. 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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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의 구슬'이 주는 교훈


상황(狀況)이 변화한다면 인간은 그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생각하는 방법, 느끼는 방법, 사는 방법이 달라지고 풍모까지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옛날 것이 좋은 것이다, 전통을 지켜라 하고 소리높이 외치며 상황의 변화를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풍차를 향하여 돌격하는 돈키호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지켜야 하는 전통이라면 그것을 아무리 지키려 하더라도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은 오히려 소멸되는 것이 좋다.


전통이란 억지로 지키려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전해져 가기에 전통인 것이다. 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은 억지로, 또는 인위적으로 지키려 해도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비자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한비자는 동일한 사실까지도 상황에 따라서 달리 해석되고 다른 가치로 평가된다고 말하며,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얘기하고 있다.


초(楚)나라에 변화(和)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초의 산중에서 아직 갈고닦지 않은 구슬의 원석(原石)을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소중히 가지고 돌아와서 초의 여왕(辰王)에게 받치었다. 초왕이 그것을 구슬의 공인(工人)에게 감정시키자 그 공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보통 돌입니다."


여왕은 변화가 거짓말을 하여 속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변화의 왼쪽 다리를 잘랐다.


여왕이 죽자 무왕(武王)이 왕위에 올랐다. 변화는 다시 그 구슬 원석을 받쳐 들고 무왕에게 헌상했다. 무왕이 구슬의 공인에게 감정을 시키자 이번에도 같은 대답이 나왔다.


“이것은 보통 돌입니다."


무왕 역시 변화가 거짓말을 하여 속이려 한다고 생각하고 변화의 오른쪽 다리를 잘라버렸다.


무왕이 죽자 문왕(文王)이 왕위에 올랐다. 변화는 그 구슬 원석을 안고 초산(山) 기슭에서 울고 있었다. 3일 낮 3일 밤을 계속해서 울었기 때문에 눈물은 메말라 버리고 대신에 피가 흘러나왔다. 문왕은 이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 그 까닭을 물었다.


“세상에는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은 사람이 많이 있는데 왜 너만 그렇게 슬프게 우느냐?”


“나는 발목이 잘리는 형벌을 받은 것이 슬퍼서 우는게 아닙니다. 이렇게 훌륭한 구슬이 보통 돌이라는 말을 듣게 됨으로써 정직 하나만으로 살고 있는 내가 거짓말쟁이라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슬퍼서 견딜 수 없습니다.”


변화는 이렇게 대답했다.


문왕이 구슬의 공인에게 원석을 갈고닦게 해 보니 과연 훌륭한 보석이었다. 그리하여 이 구슬에는 ‘화씨(和氏)의 구슬'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동일한 사실이라도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고 달리 평가된다는 것을 강조한 한비자의 이야기이지만 이와 같은 의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뜻을 내포한 설화이다. 한비자는 이 '화씨의 구슬’에 대한 이야기에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다.

아름다운 구슬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탐을 내는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헌상한 구슬의 원석(原石)이 아름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아무런 손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두 다리가 잘린 뒤에 비로소 그것이 진짜 구슬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구슬을 보고 분간하기란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법률은 화씨의 구슬보다 귀중하다. 더구나 법률은 신하들이나 백성들의 이기적이며 사악한 행위를 금지하는 데 이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률을 엄하게 적용하지 않으면 신하와 백성들의 공격을 받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법률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사람이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오직 제왕의 위업을 성취시킬 수 있는 구슬의 원석, 즉 법률을 제왕에게 아직 헌상하지 않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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