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2023. 4.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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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의 설득력


초왕(楚王)이 전구(田鳩)를 보고 말했다.


“묵자는 명성이 크게 떨친 학자다. 스스로 솔선하여 실행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은 지나치게 많은데 전혀 감동적이 못된다. 어째서인가.”


“지난달 진왕(秦王)이 그 딸을 진(晋)의 공자에게 시집을 보내었습니다.


신부의 의상은 진(晋)나라에서 만들어 줄 것으로 생각하고 함께 가는 70명의 시녀들에게만 화려한 옷을 입혀서 보내었습니다. 진(晋)에 도착하자 진나라 사람들은 함께 온 시녀들에게만 넋이 빠져 진왕(王)의 딸을 무시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녀들은 잘 시집보냈다고 할 수 있겠지만 딸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또 초(楚)나라 사람으로 정(鄭)나라에 가서 보석을 파는 자가 있었습니다. 목란(木蘭)으로 상자를 만들고, 상자에는 향기 높은 육계(肉桂)와 산초(山椒)를 피워서 넣고 주옥을 깔고 붉은 홍옥(紅王)으로 장식한 데다가 비취를 박았습니다. 그러나 정나라 사람들은 그 상자만 사고 보옥은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고 보면 상자는 잘 팔았다고 할 수 있지만 보옥을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세상에서 유행되고 있는 변론은 화려하고 감동적인 말을 사용하여 설명되고 있습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가끔 그 말의 화려함에만 정신을 빼앗겨 그것이 도움이 되는 것인지 어떤지를 잊게 되기 쉽습니다. 묵자의 말은 선왕(先王)의 도(道)를 전하고 성인(聖人)의 유언을 논하여 사람들에게 뚜렷이 제시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그 말을 화려하게 장식한다면 반드시 사람들은 그 수사(修辭)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수사로 인하여 효용이 손상을 입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보석을 팔려고 한 초나라 사람이나 딸을 시집보낸 진왕과 똑같은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묵자의 말은 장황하지만 유익하지 못합니다.”


진실을 말하려면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다는 말일까. 더구나 그 말이 분명히 상대방의 마음에 도달했는가 어떤가도 확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한비자는 이렇게 적어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노력하여 그것을 마신다. 그것을 마시면 자기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충언은 귀에 거슬린다. 그러나 현명한 군주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실제로 효과를 올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일깨우듯이 적은 다음, 설득에 대한 집념과 정열을 쏟아 기록한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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