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5-4 명백락의 제자 교육과 처세술
명백락의 제자 교육과 처세술
백락은, 미워하는 제자에게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名馬)를 가려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아끼는 제자에게는 보통 말을 가려내는 방법을 가르쳤다.
말할 것도 없이 백락이란 말을 잘 가려내는 것으로 유명한 사람의 이름이며, 그 때문에 후세에 말장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무튼 한비자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는 한 시대에 한필이 있을까 말까 한 것이므로 그런 말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그다지 돈벌이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말은 매일 매매가 되고 있으므로 보통말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면 돈벌이는 빠르고 잘 되는 것이라는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아마 하루에 천리나 달리는 명마를 알아낼 수 있다는, 말하자면 고급기술을 몸에 익히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명예임은 틀림없지만 거의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전혀 효용이 없는 허명(虛名)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한비자는 아마도 인간은 허명보다는 실제에 도움이 되는 일, 현실적인 효용을 더 추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아름다운 젓가락보다는 밥이 중요
주군(周君)을 위해 젓가락에 그림을 그리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3년이 걸린 끝에 그림을 다 그렸다. 주군이 그것을 보니 옻칠을 한 보통 젓가락과 다름이 없다. 주군은 몹시 화를 냈다. 그러자 젓가락에 그림을 그린 사람이 말했다.
'높이 열 길의 토담을 쌓고, 그 토담에 8척의 창을 뚫은 다음, 태양이 떠오 를 때 그 창에다가 이 젓가락을 놓고 햇빛에 비추어 보시기 바랍니다.”
주군은 그의 말대로 토담을 쌓고 창을 뚫은 다음 그 젓가락을 비추어보니 온통 용사(龍蛇)·금수(禽獸)·거마(車馬)가 그려져 있고 만물의 형상이 모조리 갖추어져 있었다. 주군은 크게 기뻐하였다.
젓가락에 그림을 그린다는 일은 분명히 정력을 다하는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실용성은 아무 그림 없는 보통 옻칠한 젓가락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임을 한비자는 코멘트하고 있다.
별것 아니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현실주의자였던 한비자는 실용성, 즉 현실적인 효용을 중시하는 것이다. 교묘한 예술이나 정합성(整合性)이 있는 고상한 이론보다도 현실 그 자체에 가치의 기준을 둔 것이다. 그리고 안개만 마시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한 그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 아닌가. 그러한 관점에서 한비자는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인용하고 있다.
도깨비보다 개나 말을 그리기 어려운 이유
제왕(王)한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찾아왔다.
“무엇을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가.”
제왕이 이렇게 묻자, 그 화사(師)는 대답했다.
“개나 말을 그리기가 어렵습니다.”
“그럼 무엇이 그리기 쉬운가.”
“도깨비의 그림이 가장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 개나 말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그대로 베껴서 그것과 똑같이 그려내어, 보는 자로 하여금 실물과 똑같다고 납득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도깨비는 원래가 형태가 없는 것이며,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그리기도 쉬운 것이다라고 한비자는 말한다.
예술은 현실의 모방이라고 한다. 현실 우선의 현실주의적 예술관과 더불어 중국인의 현실 선호가 잘 나타나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도 당연히 많건 적건 현실 우선의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보다는 경험
조(趙) 나라의 대신 우경(虞慶)이 집을 짓게 되었다.
"지붕이 너무 높아."
우경은 목수를 보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목수는 대답했다.
“이건 이제 막 지었기 때문에 지붕의 흙이 아직 젖어있습니다. 지붕에 걸 친 서까래도 아직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자 우경은 반론했다.
“그렇지 않네. 대체로 젖은 흙은 무겁고, 마르지 않은 서까래는 휘는 법이다. 휘인 서까래가 무거운 흙을 받치고 있는 만큼 지붕은 더욱 낮게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해가 나면 흙은 마르고 서까래도 마른다. 흙이 마르면 가벼워지고 서까래가 마르면 휘어지지 않게 된다. 휘어지지 않게 된 서까래가 가벼운 흙을 받치는 것이다. 지붕은 차츰 높아질 것이 틀림없다.”
목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경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집은 주저앉고 말았다.
범차(范且)가 말했다.
“활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최종 공정(最終工程)에 들어갔을 때이며 처 음이 아니다. 대체로 궁사(師)가 활을 매기 위해서는 먼저 활을 교정하는 틀 속에 넣어 30일 동안 천천히 조정한 다음 현(弦)을 매자마자 하루 만에 벌써 시사(試射)를 해 버린다. 이렇게 한다면 처음에는 충분히 시간을 들였는데도 마지막에 가서 지나치게 성급한 짓이 되고 만다. 어찌 부러지지 않고 견디겠는가. 나 같으면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 교정틀 속에 하루동안 활을 넣었다가 현을 매고 30일이 지난 다음에 시사를 한다.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거칠지만 끝에 가서는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셈이 된다.”
궁사는 반론을 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그대로 했더니 활은 부러지고 말았다.
중력(重力)이나 탄성(彈性)에 대해 얼마간의 지식이 있는 우리로서 볼 때 당연한 일이기는 하지만,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높이 오른다는, 당시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던 원리에서 우경은 연역(演繹)을 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아주 정합성을 가진 철학적인 논의였던 것이다. 또 범차는 끝을 신중히 한다는 철학적인 배경을 가진 행동양식을 활의 제작에 비유한 것으로서, 이 또한 극히 정합적인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항상 예측을 잘못해 온 현재의 경제학설이나 무책임한 평론가들의 의견도 이와 같은 것이리라. 그러나 한비자는 이렇게 논평한다.
범차나 우경의 말은 수사학(修辭學)에 뛰어나서 반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이치가 정연하지만 실제상황에는 맞지 않는 데가 있다. 그러나 윗자리에 있는 자는 이런 말을 기꺼이 생각하며 금지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일을 그르치는 원인이다. 일반적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병력을 강화시킨다는 실제적인 효과를 구하려 하지 않고 듣는 이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화려한 궤변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이 있는 사람을 물리쳐서 집을 부수며, 활이 부러지게 하는 그러한 엉터리를 채용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국사 (國事)를 처리함에 있어서 목수가 집을 짓고, 궁사가 활을 만드는 영역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기술이 있는 사람이 범차나 우경 따위와 같은 자로부터 고통을 받는다는 것은, 허튼 말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에도 이기고, 실제로 적합한 일들이, 바꿀 필요가 없는데도 논리를 이 기지 못하는, 그런 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쓸데없는 변 설을 좋은 것으로 치며, 개변(改變)의 여지가 없는 실제적인 말을 경멸한 다. 이야말로 나라가 흔들리는 연유이다. 지금도 범차나 우경과 같은 인간 은 끊이지 않고 나타나며 윗자리에 있는 자는 여전히 그것을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집을 부수고 활을 부러뜨리는 따위의 언론을 존중한 나머지 기술을 터득한 사람을 마치 목수나 궁사의 입장에 서게 하는 것과 같다.
목수나 궁사가 그 기술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집은 무너지고, 활은 부러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기술을 터득한 인간이 그 기술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나라는 혼란하고 윗자리에 있는 자는 위험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