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사랑의 지혜

[한비자]6-5 천하를 그물로 삼아라

고전 읽기 2023. 4. 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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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를 그물로 삼아라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이 아침 일찍 외출을 하여 동장(東匠)의 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자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죽은 사람을 위해 소리를 크게 내면서 우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자산은 마부의 등을 두들겨 마 차를 멈추게 했다. 한동안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그는 담당관원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잡아오게 하여 심문을 했다. 그러자 강도의 소행인 것처럼 꾸미고 자신이 남편을 교살(殺)했다는 자백을 받았다.


뒷날 마부가 자산에게 물었다.


“주군께서는 어떻게 그것을 아셨습니까”


“그 울음소리가 몹시 겁을 먹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병에 걸리면 걱정을 하고 죽을 것 같으면 겁을 먹으며 죽고 나면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이미 죽은 사람 앞에서 울고 있으면서 슬퍼하지도 않고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았어. 그래서 무슨 뒤가 켕기는 일이 있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한 거야"


자산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자산의 정치는 한없이 바쁘지 않은가. 범죄를 반드시 자기의 귀로 듣고, 자기의 눈으로 보고, 비로소 그것을 안다는 식이라면, 정나라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대단히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직(司直)의 관리에게 맡기지도 않고, 갖가지 사실을 꿰어 맞추어 다방면에 걸쳐 검증하는 방법을 취하지는 않으며, 사물의 기준이나 규칙을 분명히 하지 않고, 다만 자신의 뛰어 난 청각이나 시각만을 믿고 지력(知力)을 다한 끝에 겨우 한 가지 범죄를 발견한 다는 것은 일국의 정치로서 너무나도 무책(無策) 한 것이 아닐까."


하물며 천하의 사물은 한정이 없는데 인간의 지력은 한계가 있다. 한계 있는 것은 한정이 없는 것에 이길 수가 없을 것이며, 사람의 지력은 천하의 사물을 모조리 알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물을 이용하여 각각의 사물을 다스리고 처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래서 일하는 자의 수는 많지만 윗자리에 서는 사람은 적다. 적은 수가 많은 수를 이길 수 없을 것이고,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아래서 일하는 사람을 빠짐없이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각각의 사람에게 의지하여 사람을 알고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신체를 피로케 하지 않고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고 지력을 다하지 않고도 범죄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송나라의 속담에 명궁 예(名弓 羿)의 얘기가 있다. -어떤 새이 건 간에 명궁인 예의 곁을 스치고 날아갈 때 예는 반드시 그것을 쏘아 맞힌다고 한다면 거짓말이 된다. 천하를 그물로 삼는다면 새는 단 한 마리도 도 망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범죄를 발견하는데도 커다란 그물이 있으면 어느 하나도 놓치는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법규를 마련하지 않고 자기 혼자의 통찰력이나 판단력을 궁시(弓矢)로하여 모든 범죄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면 자산도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지(知)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적(賊)이다'라고 노자(老子)는 말했거니와 그 말은 그대로 자산에게 해당된다.


어떤 사람을 빌어, 한비자는 그렇게 논단(論斷)하고 있다. 총명하기는 하 만 단 한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려고 하면 조직에는 반드시 틈새가 생기는 것이며, 조직은 조직의 구성원 전체로 운영되지 않으면 안 된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기준을 명시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한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뿐이 아니다.


礼楽이 성하고 굶주림이 없어진 뒤

 

자산이 정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정의 군주인 간공(簡公)이 자산에게 말했다.


“술을 마셔도 즐겁지가 않고, 제사에 쓰는 제수가 충분하지 못하며, 종, 고, 우, 슬(鐘, 鼓, 竿, 瑟)이 잘 울리지 않고 예악이 퇴보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나의 책임이다. 국가가 안정되지 못하고 국민이 안심을 하지 못하며, 평시에는 농경에 종사하고 전시에는 병사가 되는 경전(耕戰)의 선비가 평화롭게 화합하지 못하고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에게는 직책이 있다. 우리는 서로 그 직책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산은 물러나와서 정치를 지휘하기를 5년. 나라에는 도적이 없고 길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제 것으로 삼으려는 자도 없어졌다. 복숭아나 대추가 온 길에 주렁주렁 달려 있어도 팔을 뻗어 그것을 따려는 자도 없으며, 장도칼 같은 작은 물건을 길에서 잃어도 사흘이 지나면 주인의 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3년 동안 그 방침을 변함없이 계속하니 국민들 사이에는 굶는 자가 없어졌다.


한비자는 이런 설화를 인용하면서 유교적으로 이상화(理想化)된 개인의 연장선상에 있는, 개인과 동질의 것으로 가정한, 국가정치에 있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빈틈없는 자산(子産) 개인의 배려나 사랑이 단순히 도 로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것이라고, 앞서의 설화와의 대비에서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정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자산 개인의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인과는 이질적인 조직인 국가에 다른 요인이 작용했기 때문이며 개인의 사랑을 찬미하기 전에 그 다른 요인을 탐구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적어도 자산 한 사람의 사랑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빠짐없이 미친다는 것은, 자산이 아무리 유능하며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전혀 불가능할 것이고, 그것이 환상인 이상 위험한 일일 것임에 틀림없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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