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욕망의 지혜

[한비자]7-6 자기 이익을 살리는 결단

고전 읽기 2023. 5. 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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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익을 살리는 결단


한비자는 인간을 추상적인 노동력으로서 포착하고 그 관리술은 모든 인간 이 가지고 있을 것이 틀림없는 욕망을 바탕으로 ‘신상필벌’로써 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을 단일한 노동력으로서 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상의 세계이지, 현실적으로는 개별구체적인 인간이 각자 여러 가지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만약에 인간이 옷을 입지 않고 밥을 먹지 않더라도 배고픔이나 추위를 느끼지 않으면, 또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면 윗자리에 있는 사람을 위해 봉사하려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 욕망이 윗자리에 있는 사람에 의해 제어받지 못하는 인간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한비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에피소드를 인용한다.


최초의 사형


태공망 여상(太公望呂尙)이 동쪽 나라인 제(齊)의 왕으로 봉해졌다. 제나라의 동쪽 발해(渤海)의 변경에 광율(狂矞)과 화사(華士)라는 은사(隱士) 형제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의논하여 강령을 만들었다.

 

 '천자의 신하가 되지 않고, 제후(諸侯)와 교분도 맺지 않는다. 전답을 갈아 식량을 얻으며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남에게서 얻으려 하지 않는다. 위로부터 지급되는 명예도 봉록도 필요 없다. 취직하여 관리체제에 얽매이는 일 없이 체력을 사용하는 노동에 종사하자' 태공망은 제나라 수도 영구(営丘)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담당자를 파견하여 두 형제를 잡아와 죽여버렸다. 최초의 사형집행이다.


주공단(朱公旦)은 노(魯)나라에서 그 얘기를 듣고는 긴급히 사자를 보내어 힐문했다.


“그 두 사람은 행실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오늘 막 제나라에 봉해지자마자 그 훌륭한 두 사람을 죽임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 두 형제는 서로 의논하여 '천자의 신하가 될 수 없고, 제후와 교분도 맺지 않는다. 전답을 갈아 식량을 얻으며 샘을 파서 물을 마시고 남에게서 얻고자 하지 아니한다. 위로부터 지급되는 명예도 봉록도 필요 없다. 취직하여 관리체제에 얽매이는 일 없이 체력을 사용하는 노동에 종사하자'는 강령을 만들었습니다.


천자의 신하가 될 수 없다는 자는 나도 신하로 삼을 수 없습니다. 제후와 교분을 맺지 않겠다는 자는 나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전답을 갈아서 양식을 얻고 샘을 파서 물을 마시며 남에게 구하려 하지 않겠다는 자는 나로서도 상벌에 따라서 장려하거나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위로부터 지급되는 명예가 필요 없다고 한다면 아무리 현명하다고 해도 나를 위해 도움이 되어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위로부터 지급되는 봉록이 없다면 아무리 현명하더라도 나를 위해 필요한 공적을 세우려고는 하지 않겠지요. 취직을 하지 않으면 관리할 방법이 없고 임용되지 않으면 충성심이 없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상적인 정치를 행한 옛날의 왕들이 신민으로 하여금 일을 잘할 수 있게 한 것은 작록(爵綠)과 형벌에 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작, 녹, 형, 벌의 4가지에 의해 충분히 일을 시킬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대체 누구 위에 서자는 것이겠습니까. 전쟁터에서 공을 세운 것도 아닌 터에 이름이 높아지고, 농경으로 생산성을 높인 것도 아니면서 평이 좋아진다면 국민을 교화시키는데 좋지 못합니다.


가령 여기 말이 있다고 합시다. 그야말로 좋은 말다운 모양만으로는 천하에 제일 가는 양마입니다. 그런데 달리게 하려고 해도 달리지 않고, 멈추게 하려고 해도 멈추지 않으며, 왼쪽으로 돌라고 해도 왼쪽으로 돌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라고 해도 돌지 않고, 그런 식이라면 천한 하인이라 할지라도 그 말의 다리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인이 양마(良馬)의 다리에 신뢰를 두고자 하는 것은, 양마에 맡기면 이 익을 얻을 수 있고 위해를 모면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천한 하인일지라도 그 다리를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은 천하의 현인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윗사람의 도움이 되어주지 않으려 하고, 자신은 그 행위가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지라도 윗자리에 있는 자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는 자를 훌륭한 군주로서는 신하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키는 말을 듣지 않는 양마와 같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사형에 처했습니다.”

 

태공망은 이렇게 대답했다.

욕망보다는 조직원리


사형이란 역시 대단히 잔혹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자유를 찾아 떨어져 나간 자를 현대사회가 얼마나 잔혹하게 대우하고 있는가는 우리도 종종 보고 듣기도 한다.


생산을 높이고 혹은 국가를 방위하기 위한 노동력 내지는 전력(戰力)에 지나지 않는 인간은 기대된 만큼만 욕망을 가져야 하며 더구나 그 관리의 범위 내에서 조직원리를 침범하지 않을 정도의 욕망밖에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 범위 안에 있는 이상, 사람은 누구나 크게 욕망을 키우고 효용을 높임으로써 충분한 만족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조직원리를 침범할 정도로 욕망을 비대시키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욕망을 지렛대로 하여 '신상필벌'에 의한 '백성의 사력'을 효율 적인 조직화로 제기한 한비자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또 욕망의 억제도 충고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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