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장자] 인간은 기량을 크게 해야
그러나 현실을 초월한다는 것이 현실을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장자』는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도’가 관철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며, 모든 존재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 원리이다.이러한 ‘도’의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에는 차별이 없는 것이 된다. 시비거리도 없고 선과 악도 없다.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별이 있을 수도 없다.
가령 차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그런 차별에 구애를 받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장자』 말한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유명한 얘기이다.
원숭이에게 밥을 주면서 '앞으로 아침에는 세 그릇, 저녁에는 네 그릇을 주겠다'라고 했다.
원숭이는 모두 역정을 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안, 미안. 그럼 아침에 네 그릇, 저녁에 세 그릇을 주겠다'라고 설득했더니 원숭이들은 좋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는 것이다.
아침에 세 그릇과 저녁에 네 그릇, 아침에 네 그릇과 저녁에 세 그릇, 실제로는 아무 차이도 없다. 그런 것도 모르고 눈 앞의 일에만 얽매이는 어리석음을 비웃은 얘기가 바로 이 얘기다. 우리는 자칫하면 작은 이해관계에 마음을 뺏기고 대국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기 쉽다.
역시 시야가 좁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태도를 훈계한 얘기로 '와우각상(媧牛角上)의 싸움'이란 유명한 고사가 있다.
옛날 위(魏)나라에 혜왕(惠王)이란 임금이 있었다. 제(齊)나라와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어느 때 갑자기 상대가 일방적으로 이 동맹을 파기했다. 몹시 노한 혜왕은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를 하고 싶어서 중신 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중신들은 당장 공격하자는 주전론자와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두 파로 갈라져서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이때 대진인(戴晋人)이란 현자가 나와서 혜왕에게 물었다.
“임금님께서는 달팽이란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觸)이란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이란 나라가 있어, 서로 영토문제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읍니다. 어느 때에는 15일이나 격전이 벌어져서 양쪽 사상자가 수만이 넘어서, 마침내 쌍방은 후퇴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농담은 꺼내지도 말라"
“결코 농담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것을 똑똑히 들어주십시오. 임금님께서는 이 우주 상하 사방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야 없을 테지"
"그럼 자기 자신의 마음을 그 끝없는 세상에 펼치고 있는 자가, 이 지상의 나라들을 보면 거의가 있는 둥 마는 둥 한 존재와 같다고 할 수 없겠습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그 나라들 중에 위나라가 있으며, 위나라 안에 서울이 있고, 그 서울 안에 임금님이 계신 겁니다. 그러시다면 임금님과 만나라의 임금님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별 다름이 없다는 뜻이냐?”
혜왕은 대진인이 물러간 뒤에도 얼마 동안 넋을 잃고 아무것도 못했다는 것이다.
끝없는 대우주에서 본다면 이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같은 것은 아주 미소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작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 그것이 『장자』가 말하는 ‘현실을 초월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생활을 돌이켜 본다면, 각양각색의 이해관계가 얽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얽매이지 말라고 해도 간단히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시 여러 가지 얽매임 속에서 꾸준히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장자』가 말하는 세계가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가령 일대(一代)에 이룩해 놓은 경영자를 만날 기회가 있는데 각자 모두에게는 감탄할 정도로 박력을 보이는 반면, 개중에는 인간적인 폭이 좁은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다. 또 기업의 관리자로서도 그 유능한 면은 분명히 이해할 수 있지만 대화를 나누어보면 시야가 좁은 느낌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째서 그런 인상을 주는가. 그것은 자기 생활과 임무에만 열중하다 보니까 그 밖의 넓은 세계에 시선을 돌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자』, 이 한 권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은 고전이다. 이것을 읽으면 인간으로서의 그릇을 한 쾌, 또는 두 쾌 이상 크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 동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 『장자』라는 책인 것이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