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과 현대 처세학 (난세의 인간학)/정관정요(貞觀政要)

2. [정관정요]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고전 읽기 2022. 12. 25.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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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項羽)와 유방(劉邦) 두 사람은 진시황이 죽은 뒤에 천하를 제패하려고 오래 싸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유방이 항우를 깨고 천하를 통일하여 한()이란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이 두 사람의 싸움은 처음엔 항우군이 우세했다. 유방은 끝까지 몰렸지만 끈질기게 버티다가, 결국 열세를 만회하여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 승리한 원인에 대해서 유방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게는 소하(蕭何), 장량(張良), 한신(韓信)과 같은 세 걸물이 있었다. 이 세 사람을 잘 이용한 것이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항우는 범증(范增)과 같은 장군이 있었는데, 그 한 사람조차도 이용하지 못했다. 이것이 항우의 패인이다."


세 걸물을 이용한 것이 승리의 원인이라고 말했는데, 그렇다고 수족처럼 마구 부렸다는 것이 아니다. 유방은 3명의 의견을 실로 잘 들었다. 유방이 그들에게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부하가 한 말을 귀담아듣고 마지막에 가서 '바로 그거야' 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유방의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을 취하면 부하로서도 그만큼 책임을 느끼고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유방이 부하를 이용한 비법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부하의 의견이란 것은 내용으로 보면 대개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정책 또는 전략 전술에 관한 진언, 둘째는 톱이나 상사의 과실을 간하는 간언이다.

 

유방의 경우는 주로 전략전술에 관한 진언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지만, 톱으로서 어려운 것은 간언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약은 써도 병에 좋고,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려도 행동에 이롭다’는 격언이 있는데, 간언이란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자신의 결점과 과오를 지적당하면 아무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것을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에서 당태종만큼 간언을 너그럽게 받아들인 황제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자기 스스로가 간언을 듣고 싶어 했을 정도다. 정관정요』를 읽으면 그런 것이 확실히 나타나고 있다.

 

가령, 태종은 어는 때 중신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예로부터 제왕 중에는 자기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공이 없어도 상을 주고, 화가 나면 죄가 없어도 벌을 내려서 처형하는 경우가 많았다. 천하의 대란(大亂)은 모두 이런 데서 원인이 되어 일어났던 것. 나는 주야로 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무스 일이든 좋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여기 모인 경들도 부하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해서 거부해서는 안 된다. 부하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상사를 간할 수 있는가"

 

또 만년에는 위징을 불러놓고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근래에 와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신하가 많아졌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위징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허심탄회하게 신하의 의견을 경청하셨습니다. 종종 의견을 말씀드리는 자가 있어도 늘 그렇게 해오셨습니다.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킨다 해도 각자의 나름대로 이유가 다릅니다. 의지가 약한 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해도 입밖에 내지는 못합니다. 평소 측근에서 뫼시지 않는 신하는 신뢰가 없음을 두려워하여 좀처럼 입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지위에 연연하는 자는 말을 잘못하여 모처럼 얻은 지위를 잃지나 않을까 염려해서 역시 발언하기를 꺼려합니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입니다"

 

위징의 대답은 부하의 심리를 교묘히 묘사해서 톱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태종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과연 그대의 말과 같소. 나는 언제나 그런 일을 반성하고 있소. 신하가 군주를 간하려면 죽음을 각오하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오.그것은 형장으로 가거나 적의 대군 속으로 돌격해 가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소. 간언하는 신하가 적어진 것도 바로 그런 원인에서였군. 나는 앞으로도 겸허한 자세로 간언을 받아들이고자 하오. 제발 그대가 솔선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버리고 의견을 말해 주기 바라오.'

 

태종은 일생을 이런 태도로 관철해서 신하의 의견을 널리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것이 정관정요』에서 배워야 할 제 1의 조건이다.

 

다만 부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고 해도, 그보다 앞서 유능한 많은 인재를 부하로 거느려야 한다. 태종의 막하에는 위징, 방현령을 비롯하여 쟁쟁한 인재가 모여 있었다. 이 인재 모으기의 노력도 동시에 배워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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