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전국책] 의표를 찌르는 설득력
사람을 설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비법이 있다. 그 하나가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방법이다. 엉뚱한 것을 말해서 상대의 관심을 끌고 갑자기 본론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것은 특히 설득하기 어려운 상대에게서 효과를 많이 얻는다고 한다. 세객들도 종종 이 방법을 써서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그 예를 두 가지만 소개한다.
제나라 재상에 정곽군(靖郭君)이란 사람이 있었다. 설(薛)이라는 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데, 어느 때 거기에 자기의 성을 쌓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에게 붙어서 사는 세객들이 모두 들고일어나서 중지하라고 진언했다는 것이다. 귀찮아진 정곽군은 심부름하는 자에게 일렀다.
"이제 됐다. 손님이 와도 더는 들여보내지 말라"
그러나 곧 한 세객이 찾아와서 면담을 요청했다. '세 마디만 말하겠소. 그 이상 말하면 솥에다 넣고 불을 때도 좋소'라고까지 말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이다'하고 정곽군은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만나주기로 했다. 사나이는 종종 걸음으로 들어와서 ‘해(海), 대(大), 어(魚)'라고 만 말하고 돌아가려고 했다. 확실히 세 마디다. 그러나 이 세 마디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잠깐 !"하고 정곽군이 말하자 그 사나이는
"나도 목숨이 아까운 사람입니다."
"알았어, 자세히 말해 보라”
사나이는 그제서야 대답했다.
“대어를 잘 아실 겁니다. 워낙 크기 때문에 그물에도 걸리지 않습니다. 낚시로 낚아 올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큰 물고기도 뭍으로 올라오면 안타깝게도 땅강아지의 먹이가 됩니다. 제나라는 당신에게 물에 해당됩니다.이것만 누르고 있으면 설 땅에 성을 쌓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나라에서 떨어지면 하늘에 닿을 만큼 성을 쌓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정곽군은 과연 그렇다 하여 성 쌓기를 중지하기로 했다.
사나이가 말하고자 한 것은, 분수를 모르면 파멸의 씨앗이 된다는 점이었는데, 이 얘기의 특징은 독특한 설득법에 있었다. '해, 대, 어’와 같은 기발한 말로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 놓고 천천히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날 광고의 캐치프레즈의 수법과 비슷하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위나라의 안리왕(安王)이 이웃 조나라를 공략하려고 했을 때의 일이다. 위나라의 계량(季梁)이란 세객은 종종 유세를 다니느라고 집을 비웠는데 하루는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겠다는 소문을 듣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돌아와서 안리왕에게 면회를 청했다. 계량으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전쟁을 중지시키려고 생각했으나 그도 설득의 명수인지라 처음부터 그런 낌새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리왕 앞에 나서자 우선 이런 얘기부터 꺼냈다.
“지금 돌아오는 길에 한 사나이를 만났는데, 수레를 북쪽으로 달리면서 초나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초나라는 남쪽에 있는데 왜 북쪽으로 가느냐 물었더니, 사나이는 말(馬)은 아주 준마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이 좋은지는 모르지만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했더니 사나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여비도 충분히 있다고 했습니다. 그럴는지 모르지만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했더니, 사나이는 좋은 마부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조건이 이렇게 맞아 들어가면 점점 초나라에 멀어질 뿐이지요!”
안리왕이 관심을 보이며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했을 때 계량은 갑자기 본제로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는 천하의 신뢰를 얻어 패왕이 되어서 천하에 호령을 하고자 합니다. 나라가 크고 군대가 강하다는 것을 믿고 이웃나라를 공략하여 영토를 넓히고 명성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섣불리 움직이면 그만큼 패왕의 자리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초나라로 가려고 하면서 반대 방향인 북쪽으로 달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안리왕은 이 설득으로 결국 조나라를 공략하려는 계획을 중단했다는 것이다.
계량의 얘기는 기본 방침이 틀렸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목적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도 자칫하다가는 같은 과오를 범하기 쉽다. 기업 경영에 있어서, 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기본 방침을 항상 확인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모처럼의 노력도 헛일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재미있는 일화로 상대의 관심을 끌게 한 계량의 얘기도 의표를 찌르는 설득법의 전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실제로는 이렇게 원만하게 진전되는 일은 적을지 모르지만 유효한 설득법임에는 틀림없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