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사기] 인심을 모은 협객들
『사기』에는 '유협열전(遊俠列傳)'이란 모음이 있다. 당시를 대표하는 유협 즉, 협객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정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협객과 같은 사람을 정사에 취급한 예도 드문 일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사마천이란 역사가는 협객들의 생활에 공감이 갔던 모양이다.
사마천과 같은 시대에 곽해(郭解)라는 두목이 있었다. 사마천은 그 곽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곽해를 본 적이 있다. 몸집은 보통사람보다도 작고, 얘기도 특히 잘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은 대단했다. 유명한 인물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흠모했고 면식이 있건 없건 그의 명성을 동경했다. 협객이라면 반드시 곽해가 나타나곤 했다.
협객이란 신분상으로 보면 한 서민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의 배경이 없을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권력과 대결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충을 겪어야 한다. 곽해가 그만한 인기를 얻은 이유의 하나는 그에게 탁월한 인심수렴술(人心收斂術)이 있었기 때문이다.
곽해에게 누이가 있었는데, 그 누이의 아들이 곽해의 이름을 등에 업고 못된 짓을 하고 다녔다. 어느 때 그 조카가 싫어하는 사람을 끌고 술집으로 가서 술을 억지로 퍼먹였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도 자꾸 퍼 먹였다. 그러자 상대는 칼을 꺼내더니 조카를 찌르고 도망했다. 곽해의 누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이대로 가만있겠느냐. 네 체면이 말이 아니잖느냐.” 하면서 누이는 곽해를 재촉했다. 곽해는 동료들을 풀어서 원수를 찾기 시작했다. 그 사나이는 견디다 못해 스스로 곽해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한참 듣고 나서 곽해는 “당신이 조카를 죽인 것도 무리가 아니겠군. 잘못한 것은 조카였군.”하면서 그 사나이를 풀어주었다. 이것으로 곽해는 또 한 번 이름을 날렸다. 곽해의 세력 정도면 그 사나이 하나쯤 처치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상대에게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놓아준 것이다. 이 일로 곽해의 명성은 한층 더 올라갔다. 그는 상대의 얘기를 듣고 이유가 있다고 해서 놓아준 것이다.
또 이런 얘기도 있다.
곽해가 외출에 나서면 사람들은 길을 양보해서 곽해에게 먼저 가게 했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일부러 발을 뻗은 채 곽해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곽해는 부하를 시켜 그의 이름을 알아오게 하였다. 부하는 차라리 없애버리자고 제안했지만 곽해가 말렸다.
“이 고장 사람에게 가볍게 보인 것은 내 잘못이다. 그 사나이는 결코 나쁜 자가 아니다"
곽해는 그 길로 마을 사무소로 가서 남모르게 부탁했다.
“저 자는 내게 중요한 사람이니 병역교체 때가 되어도 빼주게”
그 사나이는 군에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사나이는 몇 차례를 그냥 넘기고 나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마을 사무소로 가서 물어보았다. 그리고 곽해가 그렇게 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 길로 곽해를 찾아갔다. 그리고 무례했던 잘못을 백배 사과했다. 그 얘기를 듣고 사람들은 곽해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리더란 항상 남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곽해는 사람의 심리 중에서 그와 같은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이 리더에게는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