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손자] 지,용,신에 대하여
지(智),용(勇),신(信)에 대하여
『손자』를 비롯한 병법서 종류에 속하는 것 중에서,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것은 장수(將帥)라든가 지도자, 또는 조직의 리더에 관한 것이다. 그럼 『손자』는 리더의 조건으로 무엇을 들고 있는지 잠깐 그것을 살펴보기로 한다.
『손자』는 리더의 조건으로 다음 5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지(智), 둘째로 용(勇), 세째는 신(信), 넷째는 엄(嚴), 다섯째는 인(仁)이다.
우선, 지에 관한 것. 가끔, 앞을 내다보는 예견력(豫見力)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그 앞을 내다보는 힘이 지(智)다.
『손자』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있다. 즉, ‘그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로울 것이 없다’는 유명한 말이다.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지'라는 말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승산 없는 승산 없는 싸움은 하지 말라'는 것이 『손자』병법의 대전제(大前提)인데, 그 승산의 유무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지’인 것이다.
다음은 용(勇), 즉 용기 또는 결단력이라고 해도 좋다.
『손자』는 앞으로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가는 용기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흔히 이판사판으로 부딪쳐서 적과 대결하는 전법을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용기를 『손자』로 하여금 평하라고 한다면, 필부(匹夫)의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즉, 고작해야 졸장부의 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 『손자』가 말하는 참된 용기란 어떤 용기인가? 그것은 승산이 없다,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에는 단호하게 후퇴할 수 있는 용기, 즉, 서슴지 않고 뒤로 물러설 수 있는 요령 있는 용기인 것이다.
예로부터 천하를 장악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후퇴하는 결단을 재빨리 내리고 있다. 이 점이 그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코 무리한 짓은 하지 않는다. 이 이상 밀어붙여도 승산이 없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재빨리 후퇴하고 있다.
가령, 진왕조(秦王朝)가 멸망한 후 숙명의 라이벌로 패권을 다투었던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의 경우도 그러했다. 이 두 사람의 경우, 처음에는 항우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여, 유방은 피하기만 했다. 그러나, 유방은 무리한 싸움은 하지 않았다. 틀렸다고 생각되면 당장 후퇴해서 다음 전투에 대비했다. 이렇게 도망하고 있는 동안 서서히 항우 쪽에 피로가 겹치게 되어 형세가 역전되어 갔다. 즉, 유방의 승리는 후퇴의 승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 『삼국지(三國志)』의 조조(曹操)도 도망하는데 발이 빠른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는 『손자』병법을 잘 연구하여 싸움에 임해서는 대단히 높은 승률을 올리곤 했다. 승리한 이유는 역시 무리한 싸움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그가 당대에 중국 북방에서 패자(覇者)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 커다란 이유는, 후퇴할 결단을 단숨에, 재빨리 내릴 수 있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해도 좋다.
『손자』가 말한 '용(勇)'이란 바로 이와 같은 용기였음을 우리는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손자』가 지적한 리더의 조건, 그 셋째는 신(信)이다. 이 말의 본래의 뜻은 거짓말을 하지 말고 약속을 잘 지킨다는 말이다. ‘신’은 예로부터 중국인 사회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조건으로 알아 왔다.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은 도저히 인간으로 보아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럼, 『손자』는 왜 자명(自明)할 수밖에 없는 신을 일부러 리더의 조건으로 들었을까. 그것은 부하에 대한 통솔력에 크게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대수롭지 않게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는 리더에게는 부하가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거짓말을 하는 지도자에게는 부하가 따르지 않거니와, 그렇게 되면 부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자칫하다 실패하는 것은 무슨 일이고 간에 쉽게 생각하는 점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알았다 알았다 하면서 대답한 다음 나중에 그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해가지고는 부하가 따르지 않는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리더 되는 사람은 그 발언에 아무쪼록 신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상 『손자』가 든 리더의 기본적 조건인 지·용·신의 세 가지에 대해서 설명해 보았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