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2023. 1. 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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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敵)과의 싸움에 대한 계(計)

 

당대(唐代)에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켜서 옹구(雍丘)의 성을 포위했을 때의 일이다. 성 안에서는 화살도 떨어지고 이젠 꼼짝 못 하고 성 안에서 죽는 수밖에 없는 사태에 몰렸다. 이 때 수비대(守備隊)의 장순(張巡)이란 지휘관이 한 계략을 생각해 냈다.

 

우선 병사에 명하여 짚으로 인형 천 개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검은색 옷을 입혀 마치 병사의 모습으로 꾸몄다. 그리고 그 천 개의 인형을 새끼로 묶어서 한밤중에 성 밑으로 내려 보냈다. 이 인형을 본 반란군은 적병이 나타난 것으로 착각하고 화살을 마구 퍼부었다. 인형이란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장순은 인형에 박힌 수만 개의 화살을 반란군에 보이며 잘도 속아주었다는 듯이 시침을 떼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다음 작전을 위한 준비에 불과했다. 다음에는 인형 대신에 진짜 병사들을 성 밑으로 내려보냈다. 반란군은 인형이 또 내려왔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한 발의 활도 쏘지 않았다. 무사히 성 밑으로 내려간 수비병들은 반란군을 급습하여 커다란 전과를 올렸다.

 

우선 처음에 거짓으로 상대의 판단을 현혹시켜 다음에는 거짓을 진짜로 바꿔서 허를 찌르게 한다. 허와 실을 교묘히 써서 적을 때려부수는 책략이 제7계인무중생유(無中生有)'의 책략이다. 참으로 인간의 심리를 잘 파악한 책략으로 중국식 병법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이다.

 

8계인암도진창(暗渡陳倉)’이란, ‘은밀히 진창으로 건너간다는 뜻으로, 유방의 장군 한신(韓信)이 관중(關中)으로 진격할 때, 정면돌파하는 것처럼 보이고는 은밀히 진창이란 곳으로 우회작전을 폈던 데서 이 이름이 붙여졌다. 요컨대 A를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고는 B를 치는 작전으로, 발상으로서는 제6계인 '성동격서'와 비슷하다.

 

'사상 최대작전'으로 알려진 1944 6월의 연합군이 단행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그야말로 '암도진창'을 그대로 말해준 작전이었다. 당시 상륙 루트는 칼레이와 노르망디 양쪽을 생각하고 있었다. 연합군측은 일찍이 노르망디로 결정하고 있었는데 작전상 독일군에게 발각될 우려가 커서, 자주 칼레이 상륙의 허위정보를 흘리며 폭격까지 하며 작전이 가까워졌다는 인상까지 주었다. 원래 칼레이가 물자의 수송이나 공군의 지원을 생각할 때 유력한 후보지였기 때문에 독일군은 이 위장전술에 보기 좋게 걸려들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그대로 놓치고 말았다. 일설에 의하면 히틀러가 지나치게 생각했다는 설도 있지만 어쨌든 '암도진창'이 완벽하게 성공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제6계에서도 설명했듯이 한 발짝 잘못 디디면 형세가 일시에 역전될 가능성도 있어 연합군에게는 사상 최대의 작전인 동시에 사상 최대의 도박이기도 했었다.

 

또 자기는 조금도 아프고 가려운 것을 느끼지 않는 일에 비유해서 '강건너 불이란 말을 쓴다. 그 강 건너 불에 일부러 머리를 디밀었다가 화상이라도 입는다면 가장 어리석은 짓이다. 9계인격안관화(隔岸觀火)’ 강건너의 불구경이란 책략도 이와 같은 발상이다. 여기서 말한이란 적의 내분을 뜻한다. 집안싸움을 일으키고 있는 상대를 섣불리 공격해서 단결을 시키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얼마 동안 조용히 보고 있다가 적의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란 뜻이다.

 

10계인소리장도(笑裏藏刀)'는 주머니에 칼을 품고 겉으로는 싱글벙글하는 태도를 보이는 책략이다. 글자 그대로 우호적인 태도로 접근하여 상대가 경계심을 푼 것을 확인한 다음에 단숨에 습격해 버리는 기발한 계책이다.

 

송대(宋代)에 살던 조위(曹瑋)란 사람의 일화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수천의 병사가 적 쪽으로 도망했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그는 동요하는 부장들을 앞에 놓고 웃음을 띠고 이렇게 말했다.

 

“소란을 피우지 말라. 그들은 모두 나의 명령으로 행동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적측은 도망해 온 병사를 의심하고 전원의 목을 날렸다고 한다. 이 역시소리장도의 훌륭한 테크닉의 하나다.

 

그리고 제11계인이대도강(李代桃優)’이란 국부적인 손해 대신으로 전면적인 승리를 쟁취하는 책략으로서, 비유해서 말하자면 바둑에서 말하는 사석작전(捨石作戰)과 같은 것이다. 전쟁도 그렇지만 비지니스도 손실은 따르게 마련이다. 문제는 그 손실을 어떻게 장래의 이익과 연결시키는가에 있다. 그러나 무능한 리더일수록 국부적인 손실에 눈이 팔려서 결과적으로는 상처만 더 크게 할 뿐이다. 그러한 것은 손자』다음과 같은 말로 지적하고 있다.

 

“지자(智者)는 반드시 이익과 손실의 양면에서 사물을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사물은 순조롭게 진전한다. 반대로 손실을 입었을 때에는 그에 의해서 받는 이익도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하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느 시대이든 국부적인 손해에 얽매이지 말고 그것을 버리는 돌로 활용하여 보다 큰 이익을 잡도록 마음을 쓴다. 그것이이대도강의 책략이다.

 

2부의 마지막인 제12계는순수견양(順手牽羊)’ 즉 손이 하는대로 맡겨서 양을 끈다는 책략이다. ‘순수견양은 원래가 그 장소에 있는 것은 닥치는 대로 가진다는 뜻인데, 그 뜻을 다시 새기면 무리하지 않아도 손에 들어오는 이익이라면 사양하지 않고 가지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고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팔려서는 실패를 초래하게 된다. 역시 그 전제로서 확고한 목표가 설정되고 그 목표 내에서 임기응변으로 대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고도성장시대라면 몰라도 예측이 어려운 저성장시대에는 평범하게 작은 이익을 쌓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제12계인 '순수견양'의 책략이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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