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삼십육계] 병전의 계
병전(倂戰)의 계(計)
권모술수가 소용돌이치는 난세에서는 '오늘의 벗'이 언제 ‘내일의 적’으로 돌변할는지 알 수가 없다. 방심하면 당장 발목이 잡혀서 멸망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그럼 타국과 연합해서 싸우려면 무엇을 마음에 두어야 하는가? 그것을 정리한 것이 제5부의 병전의 계이다.
진나라의 시황제가 원교근공의 책략으로 천하를 통일한 것은 앞에서 이미 설명했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제나라를 공략할 때 후승(后勝)이란 실력자를 매수하여 서서히 내통자를 늘려서 싸우기 전에 이미 제나라의 얼을 빼놓았다. 상대가 기둥으로 의지하는 인물을 차례차례 농락하여 한 나라를 병합했다는 이 책략이야 말로 제25계의 ‘유량환주(偸梁換柱)’라는 책략이다.
‘유량환주’란 량을 훔치고 주를 바꾼다는 것인데 양(梁)이나 주(柱), 즉, 서까래나 기둥은 모두 집을 받치고 있는 뼈와 같은 것이다. 그것을 도둑맞았을 때 아무리 견고한 집이라도 지탱하지 못하고 와르르 허물어진다. 책략 중에서 특히 두드러진 것으로서, 현대의 기업 간에 벌어지는 합병 같은 것이 이 책략 비슷한 수를 쓰고 있으므로, 형태는 비록 변했지만 역시 ‘유량환주’의 책략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악착스럽다고 보는 것은 여하간에 조직의 장은 우선 넘어가지 않도록 내부를 확실하게 관리해 둘 책임이 있다.
제26계는 지상매괴(指桑罵槐)’ 즉 ‘뽕나무를 가리키며 회화나무 욕을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는 A라는 사람을 욕하고 싶은데 노골적으로 비판할 수 없으므로, A대신 B에게 소리를 지르며 간접적으로 A를 비판한다는 방법이다.
『36계』중에서는 우호국(友好國)이나 부하를 길들일 때 쓰는 책략으로 이용한다. 즉 우호국에 대해서는 표면적으로 비판하기가 망설여지고, 부하에 대해서는 직접 소리를 질러도 효과가 오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 간접적으로 비판을 하거나 꾸짖는 것이 한층 효과적일 때가 있다.
다음은 27번째인 '가치부전(假不)'의 계책이다.
“약은 척하고 경거망동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바보구실을 하며 얌전한 편이 좋다. 확고한 계산을 가슴속에 숨겨 두며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작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요는 바보인 척하면서 상대가 방심하도록 유인한다는 뜻이다. 사색당쟁이 심하던 조선조 중엽에 이런 식으로 바보행세를 해서 목숨을 부지한 유학자들이 우리나라에도 얼마든지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같은 사람이다. 그는 중앙의 학자들에게는 무식한 지방선비로 취급을 받아왔지만 임진왜란 같은 나라의 변이 일어나자 대활약을 했었다. 왜군들도 곽재우 장군의 의병을 대수롭지 않게 깔보다가 결국은 크게 패주하곤 했다.
대체로 훌륭한 지도자는 자신의 재기(氣)를 좀처럼 내세우지 않는다.
노자의 말을 빌자면 다음과 같다.
“지도자란 지모(智謀)를 깊숙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바보처럼 보이기 쉽다. 그것이 이상적인 처세술인 것이다.”
이쯤 되면 리더도 일류 레벨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책략으로서, 즉 연기로서 권장하고 있는 것이 '가치부전'의 계이다.
제29계의 수상개화(樹上開花)’는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깃발, 취타(吹打) 악기소리로 아군의 군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책략이다. 아군이 소수이거나 열세인 경우 이용하는 책략인데, 적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동맹국에 대해서도 상대로 하여금 믿게 해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제5부 병전의 계’의 말미에 해당하는 제30계는 '반객위주(反客爲主)의 계책이다. 이 책략은 손님의 입장에서 서서히 주인의 자리를 차지해 간다는 계책이다. 이때의 손님이란, 글자 그대로 주인의 초대를 받은 손님이란 뜻도 있지만, 주력군(主力軍)에 대한 동맹군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주목적은 손님의 입장에서 주인이 되어 주도권을 탈취한다는 데에 있다.
다만 이것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순서를 밟으며 한 발짝 한 발짝 목적을 달성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초조한 것은 금물이다. 흰 개미가 집을 허문다는 격으로 서서히 자리를 차지해 가는 계책이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