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삼십육계] 패전의 계
패전(敗戰)의 계(計)
승부는 시운(時運)을 타고 이롭지 못하게 패세로 몰리는 일도 있다. 그러나 최후까지 체념하지 않고 실낱 같은 승리의 가능성이라도 마땅히 추구하는 것이 참된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사회생의 책략이 이 제6부의 ‘패전의 계'이다.
춘추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이 와신상담 끝에 복수를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진 일화인데, 그때 구천은 서시(西施)라는 미녀를 부차에게 바치며 부차의 마음을 흔들어 놓겠다는 책략을 썼다.
이것이 제31계인 ‘미인계(美人計)’로 작자 자신은 그 취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병력이 강대한 적에게는 지휘관을 구슬려 놓는다. 상대가 지모 있는 지휘관인 경우에는 계책을 강구하여 의욕을 없애 준다. 지휘관과 병사가 의욕이 떨어지면 상대는 자연히 붕괴한다”
이 책략의 주의점은 물론 상대의 마음을 빼앗는 데 있다. 따라서 봉사하는 여성은 미녀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서시는 중국 3천 년 역사 중에서도 굴지의 미녀였다고 하니까, 그야말로 안성마춤의 인물이었다.
다음에 오는 제32계는 ‘공성(空城)의 계'이다.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 제갈공명이 ‘공성의 계’로 사마중달의 대군을 퇴각시킨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얘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달의 대군이 밀어닥쳤을 때, 공명은 성의 모든 것을 개방하고, 자신은 도사(道士) 모습으로 변장하여, 성루의 위로 올라가서 거문고를 뜯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을 본 중달은 ‘사려 깊은 공명인데, 분명히 어딘가에 복병을 매복시키고 기다리는 거겠지'하면서 서둘러 후퇴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무방비 상태를 보이며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작전을 ‘공성의 계'라고 하며, 이것은 제29계인 ‘수상개화’하고는 역심리를 찌른 계책이다. 물론 간파되면 끝장으로서, 죽음 속에서 활력을 찾는 기책(奇策)중의 기책이다.
목숨을 건 일인 만큼 오히려 진실미가 있으며 상대도 가볍게 생각하고 그 수에 걸려드는 경우도 있다.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으로는 제33계인 ‘반문(反間)의 계’도 상당히 고도한 것 중의 하나다. 이 계는 '효과적인 것은 상대의 첩보원을 역이용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적의 간첩에게 허위정보를 흘려서 상대를 혼란에 빠지게 하는 방법이다. 이때 첩자를 매수하는 방법과 모른척하면서 허위정보를 고의로 흘리는 방법이 있다. 어느 쪽 방법을 쓰든 '이 정도라면 애쓰지 않고 승리를 얻어 낼 수 있다'라고 작자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삼국지』의 적벽(赤壁)의 싸움이라고 하면 위나라의 조조와 오나라의 주유(周瑜), 촉나라의 유비의 연합군이 사투(死鬪)를 벌인 유명한 수상전(水上戰)으로서 그 승패를 결정한 것이 오나라의 노장 황개(黃蓋)의 계책이었다. 황개는 우선 주유의 부하에게 자신의 몸을 때리게 해서 마치 주유와의 사이가 벌어진 것처럼 소문을 냈다. 그 다음 조조에게 망명하겠다는 밀서를 보내고, 마치 한 편이 된 것처럼 가장하고 배에 접근하여 위나라 선박에 불을 질렀다. 이 때문에 위나라 군대는 불에 휩싸여 황급히 도망해야 했으며 조조도 겨우 목숨을 건졌을 정도였다. 여기서 황개가 조조로 하여금 신용할 수 있게 자신의 몸에 매질을 시킨 책략이 『36계』중에서 제34계의 해당되는 ‘고육(苦肉)의 계'이다.
황개의 이 이야기는 소설의 작자가 창작했는지 모르지만 책략 자체는 예로부터 실전 속에서 몇 번씩 채용되었던 계책이다. 그 중에는 사랑하는 처자와 총신(寵臣)을 희생한 예도 종종 보이는데 승부에 건 당시의 지도자들의 집념은 아주 대단한 모양이었다.
제35계는 연환(連還)의 계'이다. 적벽의 싸움에서 황개의 화전법(火戰法)이 성공을 거둔 제2의 이유는 위나라가 선박을 사슬로 묶어서 서로 연결해 놓았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한 데에 원인이 있었다. 이것을 해놓은 것이 촉나라 군의 방통(龐統)이었다고 한다. ‘연환의 계’는 이 고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우선 적의 움직임을 막고 거기에 제2, 제3의 계략을 구사하여 강대한 적을 쓰러뜨리는 책략이다. 말하자면 한 번의 싸움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이상의 계략을 써서 상대를 꼼짝 못 하게 묶어두는 데에 이 책략이 지닌 맛이 있다.
『병법 36계』의 마지막인 제36계야말로, '36계 도망이 상책’이란 유명한 명언을 남겨놓은 ‘주위상(走爲上)’의 계책이다. 즉 ‘도망하는 것이 상책'이란 뜻이다. 『36계』의 작자는 경우에 따라서는 후퇴하는 것도 불사한다. 이 또한 '용병의 철칙이다'라고 말했다. 『손자』 역시 ‘병력이 열세이거나 승산이 없으면 싸우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죽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지만 일단 후퇴해서 전력을 보존하면 언젠가는 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후퇴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지도자야 말로 참다운 지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6계』가 언제, 누구의 손으로 쓰였는지 아직 확실한 걸 모른다. 아마 『남제서(南齊書)』에 있는 ‘단공(檀公)의36 책,도망하는 것을 상책으로 삼다'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은 후세 사람이 병법의 골자를 36가지로 정리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근거에는 ‘싸우지 않고 이긴다'는 중국식 병법의 사상이 짙게 흐르고 있다. 싸움으로 지새우고, 인간의 심리를 깊숙한 곳까지 읽으려고 생사를 걸어온 중국의 병법가들, 『36계』는 그러한 병법가들의 지혜가 뭉쳐진 결정(結晶)이다. 여기에선 그 전모를 요약해서 소개했지만 냉엄한 현실을 살아남기 위한 인생의 안내서로서 지금도 그 유효성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