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2023. 1. 1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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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사람은 범려(范蠡)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다. BC 5세기, 즉 2천5백년 전에 지금 소주(蘇州)와 항주(抗州) 근처에 오()와 월(越)나라가 나란히 있으면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다.

 

월왕 구천(句踐)은 오왕 부차(夫差)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고 회계산(會稽山)으로 피해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구천은 20년을 참고 기다리며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패배의 빚을 갚았다.

 

이때 월왕 구천이 승리를 거두게 도와준 것이 범려였다.

 

공적에  의해서 대장군이란 최고의 벼슬을 한 범려는 이렇게 생각했다.

 

'기가 살아서 우쭐대는 군주에게 오래 머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구천이란 사람은 고생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나눌 수 없는 자다.'

 

범려는 구천에게 편지를 보내서 사의를 표명했다. 구천은 범려의 진의를 모르고 열심히 붙들었다. 범려는 모든 벼슬과 공명을 월나라에 묻어둔 채 제나라로 옮겨갔다. 구천과 인연을 끊어버린 것이다.

 

범려가 왜 구천의 만류를 뿌리치고 제나라로 서둘러 갔을까. 다시 다음 이야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제나라로  들어간 범려는 거기서 아들들과 사업을 해서 큰 재산가가 되었다.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제나라에서도 재상으로 취임하라는 권유가 들어왔다.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고 도()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도에서도 사업을 벌여 역시 큰 재산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차남이 초나라에서 사람을 죽이고 체포되었다. 범려는 막내아들에게 돈을 주고 차남을 구해오려고 했다. 그러나 장남이 나서서 한사코 제가 가겠다고 우겼다. 어머니도 옆에서 장남에게 시킬 것을 권유했다.

 

범려는 할 수 없이 장남을 보냈다. 그러나 장남은 돈이 아까와서 결국은 구출교섭에 실패하고 차남의 시체만 인수해 왔다. 범려는 이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럴 줄 미리 알았다. 큰 놈은 나하고 고생을 같이했기 때문에 돈을 잘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고, 막내는 어려움 없이 자랐으니까 돈을 잘 쓸 것이다. 내가 처음에 막내를 보내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큰 놈이 떠날 때 이미 각오했었다. 차남은 시체로 돌아온다는 것을 짐작했었다.”

 

굉장한 통찰력이다. 범려는 정세를 읽고 사리판단을 하는데 남다른 날카로움이 있었다. 범려가 구천이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떠난 것도,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통찰력에 의해서였다.

 

‘명철보신(明哲保身)'이란 말이 있다. 명철이란 깊은 통찰력, 보신이란 몸을 지킨다는 것, 말하자면 깊은 통찰력을 발휘해서 몸을 지킨다는 뜻이다. 범려의 명철보신이 현대의 리더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 『사기』에 등장하는 몇 명의 인물을 선택해서 리더의 마음가짐에 대해서 설명했다. 물론 『사기』에 나오는 사람이 이들뿐이 아니다. 실로 다채로운 개성이 얽히고설키고 한 그림책과 같은 취향이 있다. 한 번 『사기』를 손에 들면 흥미진진한 인물상에 매료되어 책을 놓을 수 없으며, 이 책은 인간 연구에 반드시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믿는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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