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많은 시대를 사는 지혜
그러나 상황의 변화는 단순히 국가가 멸망하거나 흥륭하는 것 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을 흔히 진보(進步)라고 말하며 인간을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 역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한비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허리에 조홀(朝笏~황제의 명령을 받아쓰기 위한 가늘고 긴 나무판)을 차고 무도용(舞踏用) 방패나 도끼를 가지고 있어도 날이 달린 긴 무기나 짧은 무기를 당해낼 수 없다. 층계를 오르내리는 법이나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한 예의범절을 강제로 가르치는 것으로는 병사를 훈련하지 못한다. 음악을 연주하면서 행하는 의례적인 사격은 강한 쇠뇌(弩)의 연속사격을 당해내지 못한다. 성을 지키고 공격해 오는 전차(戰車)를 방어하는 전법은, 미리 파놓은 지하도에 물이나 또는 풀무를 이용한 불길을 보내서 성벽을 파괴하는 전법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옛날 사람들은 도덕적인 고매함을 견주었다. 중세의 사람들은 지모(知謀)의 우열을 견주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은 힘의 크기를 견주고 있다. 옛날에는 해야 할 일도 적었으며 그 수단 역시 간단하고 조잡하며 기술도 부족했다. 그러므로 조개껍질을 나무에 매단 도구로 밭을 일구었고 수레도 손으로 밀었다.
옛날에는 인간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서로 친했다. 인간의 수에 비하여 물건이 풍부했기 때문에 재화(財貨)나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간단하게 남에게 양도했다. 그러므로 서로 양보하며 다른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는 일도 있었다. 예를 들면 서로 주고받으며, 깊은 은혜를 베푸는 것을 존경하고, 인간애(人間愛)를 칭송한다는 것은 모두 수레를 손으로 미는 것과 같은 정치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많은 시대를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적었던 옛날의 간단하고 조잡한 도구를 사들이려 한다는 것은 현명한 인간이 할 일이 아니다. 대규모의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서로 사양하던 옛날의 관습을 지키려 한다는 것은 현명한 인간의 정치방법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인간은 언제까지나 손으로 미는 수레에 타고 있지 않으며, 우수한 인간은 언제까지나 수레를 손으로 미는 것과 같은 정치를 계속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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