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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과 현대 처세학 (난세의 인간학)/사기(史記)

2. [사기] 초나라 장왕의 배짱

by 고전 읽기 2023.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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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수백 년 전, 중국의 춘추시대라고 하던 때의 얘기다. 초(楚)나라에 장왕(莊王)이란 명군이 나타나서 후진국인 초나라를 갑자기 최대강국으로 키워놓았다.

 

이 장왕은 톱으로서의 장점을 많이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왕은 즉위하고 3년 동안 정치를 외면한 채 노는 데에만 정신을 팔았다더우기 국내에 방을 붙이고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고 엄포를 놓았다그러나 장왕의 행동이 못마땅해서 마음속으로 벼르는 신하도 없지 않았다그 중의 한 사람인 오거(伍擧)라는 중신이 장왕 앞에 나섰다.

 

“의문 나는 점을 여쭈어 보겠습니다”

 

“말하도록 하라

 

“언덕 위에 새가 있습니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무슨 새입니까?"

 

장왕의 대답 또한 그럴듯하다.

 

“3년 동안 날지 않았다고 하지만 한번 날기만 하면 하늘 끝까지 날 것이다. 그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물러가라"

 

그러나 몇 달이 지났는데도 장왕의 도락은 역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다.

 

이번에는 소종(蘇從)이란 신하가 나섰다. 소종은 오거와는 달리 거침없이 직언했다. 죽음을 무릅쓰고 하는 간언이었다. 장왕은 다시 다짐했다.

 

“간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했거늘, 그걸 알고 있느냐

 

“우리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아 드릴 수 있다면 죽어도 좋습니다

 

이 각오를 들은 장왕은 그 즉시 방탕생활을 중지하고 정치의 쇄신에 착수했다. 우선 지금까지 함께 놀러 다니던 건달패 수 백 명을 모조리 처형하고 새로운 젊은이를 등용했다. 용기를 가지고 간한 오거와 소종 두 사람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했다. 이 이야기로부터 '3년을 울지 않고 날지도 않는다’는 격언이 나온 것인데 이런 점으로 보면 장왕이 그동안 방탕했던 것은 진짜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그렇게 노는 척하면서 신하 중에서 쓸 만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관찰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단 착수하자 일거에 인사를 쇄신하고 국정의 기반을 정리강화했다. 실로 놀라운 수완이었다.

 

이 이야기에서 알다시피 장왕이란 사람은 유능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날카롭고 예리한 것으로 부하를 다스리면서도 배짱이 두둑하여 부하들이 좋아했다.

 

다음에 소개하는 일화도 정치를 외면하고 노는데 빠졌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밤, 신하들을 모아놓고 술상을 준비하여 마음껏 마시자고 했다. 방 안의 등불도 모두 끄고 마셨다. 이때 기회를 만났다고 왕의 애첩을 건드린 사나이가 있었다. 애첩은 사나이의 관끈을 끊어 가지고 장왕에게 고했다.

 

“관에 끈이 없는 사나이가 범인입니다. 빨리 불을 켜고 잡아주십시오"

 

그러나 장왕은그 원인을 캐면 내가 술을 마시자고 한 데에 있는 일, 여자의 정조 때문에 부하에게 수치심을 안겨줄 수는 없다"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늘 밤은 예절을 따지지 않아도 좋다. 모두 관의 끈을 끊어라!"

 

불이 켜지니까 신하들의 관 끈은 모두 끊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장왕은 진(晋)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항상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용사가 있었다. 초나라는 그의 분투로 마침내 승리를 얻어냈다. 싸움이 끝나서 장왕은 그를 불렀다.

 

“그대와 같은 용사가 있었다는 걸 내가 몰랐음은 내가 부덕한 탓이다. 그런 나를 위해 싸운 것을 고맙게 여기는 바이지만 무슨 이유라도 있는가

 

사나이는 황공한 듯 대답했다.

 

“저는 한 번 죽은 몸입니다. 술에 취해서 무례한 짓을 범했을 때, 왕의 온정을 입고 살아났던 사람입니다. 그 뒤로 목숨을 걸고 보답할 기회만 기다렸습니다. 그날 밤 관의 끈이 끊겼던 자가 바로 저였습니다”

 

작은 일에 일일이 눈을 돌리면 부하를 통솔할 수가 없다. 관용을 베풀고 포용력이 있을 때 비로소 부하의 신뢰를 받게 된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 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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