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에 불을 때고 음식을 끓일 때는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지만, 불을 끄면 솥이 식어서 쉽게 처리할 수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적의 세력이 강대해서 대항할 수 없을 때는 그 기세를 따르며 알맹이를 빼어 버린다. 이것이 제 19계인 ‘부저추신(釜底抽薪)’이다. 즉 솥 밑바닥에서 나무를 빼어버리는 책략이다. 구체적으로는 적의 보급을 단절시키고, 적군의 의욕을 저하시키는 두 가지가 있다.
『삼국지의 조조는 ‘관도(官渡)의 전투’에서 원소(袁紹)의 대군을 격파하고 단숨에 중국 북방 일대의 지배자로 부상했다. 이 싸움 도중, 한 때 열세로 몰렸던 조조가 원소의 보급기지를 야(夜)하여 형세를 역전시킨 작전 같은 것은 그야말로 전자의 경우의 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후자의 예로서는, 반란군의 주모자와 일반 병사를 분리시킨 다음 일반 병사를 설득함으로써 사태를 수습했던 송대(宋代)의 설장유(薛長儒)와 같은 감독관의 얘기가 해당된다. 어느 쪽의 얘기든, 적의 에너지원을 차단시키는 것으로서 기세 그 자체까지도 꼼짝 못 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제20계로 넘어오는데 ‘혼수모어(混水摸魚)’ 즉 ‘물을 흐리게 하여 고기를 찾는다’는 책략이다.
1944년 12월, 히틀러는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아르덴느 언덕에 수십만의 병사와 2천 대의 탱크를 집결시키고 최후의 반격을 감행했다. 그때 영어에 능통한 장병 2천 명을 선발해서 미군 군복을 입혀서 적군 후방으로 잠입시켰다. 이른바 교란작전이다. 이 작전은 그대로 들어맞아서, 한 때 미국군의 지휘계통은 일대혼란에 빠졌다. 주력군의 진격이 저지당하게 되어 모처럼의 계책이 열매도 맺지 못하고 말았지만 이거야말로 '혼수모어’의 훌륭한 응용이었다.
이 책략은 적이 내부 혼란을 일으키고 적의 지휘 계통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이쪽이 마음먹은 대로 조종하는 것을 겨냥한 책략이다. 히틀러는 공작원을 투입하고 의도적으로 그것을 자행하여 반쯤 성공했다. 잘 활용하면 이 또한 응용범위가 넓은 묘수인지도 모른다.
전투에서 어려운 것은 공격보다도 후퇴하는 데에 있다고 한다. 타이밍, 방법, 스피드 등 그 어느 것 하나가 어긋나기만 해도 적의 먹이가 되고 말기 때문에 지휘관의 역량이 한 층 더 문제가 된다.
제21계인 ‘금선탈각(金蟬脫殼)’이란 책략은, 그와 같은 후퇴작전의 한 전략이다. 즉 진지를 굳게 다지고 끝까지 싸우는 것처럼 가장하고는 상대가 움직이지 못하는 틈을 타서 주력부대를 이동시키는 책략이다. 마치 매미가 허물을 벗어 놓고 날아가는 모습과 비슷한데 ‘금선탈각’이란 말이 그런 의미에서 나왔는지도 모른다.
상대의 눈을 속이며 후퇴작전을 성공시키는 것 역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제16계의 '욕금고종'에서는 '쥐가 막 다른 데에 이르면 고양이를 문다'는 말에 비유하며 상대를 막다른 곳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설명하려는 제22계의 ‘관문촉적(關門捉賊)’ 즉 ‘문을 닫고 적을 친다’는 책략은 주석에서도 설명했듯이 ‘약소한 적은 포위해서 섬멸하라’고 한 것처럼 말하자면 앞의 제16계와는 반대의 책략이다. 얼른 보기에 모순되는 것 같지만 요는 상황에 따라 경연(硬軟) 양면책을 분별해서 써야 한다는 뜻이다.
제23계에는, 먼 나라와 손을 잡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는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책략이다. 이것은 예로부터 많은 국가가 혼전을 빚고 있을 때 가장 유효 적절한 책략이라고 평해 왔다. 왜냐하면 먼 나라까지 병력을 수송한다는 것은 힘은 들면서도 얻는 공은 적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 나라와 손을 잡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는 '원교근공'의 책략은 서서히 세력을 확대하여 적은 노력으로 많은 효과를 올릴 수가 있다. 이 책략을 가장 교묘하게 활용한 자가 진시황으로서 한(韓), 조, 위, 초, 연(燕)과 같이 가까운 나라부터 공략해서 마지막에 제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한 수완은 ‘원교근공’에 가장 알맞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제4부의 마지막인 제24계에는 '가도벌괵(假道伐虢)’이란 책략의 차례다.
이것은 '길을 빌어서 괵을 친다'는 뜻으로 소국(小國)이 궁한 상태에 있으면 그것을 병합하는 책략이다.
괵(虢)이란 춘추시대에 있었던 작은 나라의 명칭인데 이 ‘가도벌괵’은 진(秦)이라는 대국이 소국인 우(虞)에게 길을 빌어서 괵을 공략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까지도 공략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책략이다.
원래 강자가 약자를 삼키기란, 마음만 내키면 별로 어려움이 없다. 문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또 대의명분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있다. 상대가 도저히 더 버틸 수 없는 상태에서 원조를 청해 왔을 때가 기회인 것이다. 이때야말로 주저할 것 없이 병력을 보내서 영향력을 확대하여, 기회를 보다가 병탄해 버린다. 이것이 ‘가도벌괵’의 계락인 것이다. 현대에서도 강한 입장에 있는 자에게 길을 터주고 괵을 공략하는 따위의 사례가 적지 않은데 인간의 생각이란 예나 지금이 비슷하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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