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숙아의 '냉혹한 이해타산
한비자는 새로운 상황에 적합되는 정치방법으로 법치(法治)를 주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보수파의 이기적인 손익계산(損益計算)에 의하여 법치의 가치가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위험성을 이 설화에서 얘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구자의 비애라고나 할까 아니면 시기상조라고나 할까. 그러므로 적합한 시기를 선택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는 것도 또한 중요한 것이다.
진(晋)나라 군사가 형(刑)나라를 공격했다. 제나라 환공(桓公)은 형을 위하여 원군을 보내려 했다. 그러자 대신인 포숙아(鮑叔牙)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이릅니다. 형나라가 망할 때까지 공격하게 두지 않으면, 진나라 국력은 피폐해지지 않습니다. 진나라의 국력이 피폐하지 않으면, 우리 제나라의 중요성은 증대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위험에 처한 나라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물론 훌륭한 공적이긴 하지만 멸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은혜에는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좀 더 형에 대한 지원을 늦추어 진나라의 국력을 피폐케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 제나라에 진실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망한 뒤에 그 재기(再起)를 원조해 준다면 그 명예는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환공은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살기 위한 악의(惡意)
냉혹한 이해계산으로 일관된 이 포숙아의 계획은 악의적인 설계도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악의(惡意)야말로 한비자의 특허였다. 선의(善意)는 겨우 눈물을 흘리게 하는데 지나지 않지만 악의는 일을 성취시킨다. 악의는 현실과 대결하려는 인간의 최소한의 의지일 것이고,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는, 이 자기 방어를 위한 가장 믿을 수 있는 무기일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심술할미나 심술첨지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만화로 등장하여 인기를 끌듯이, 악의에는 또한 유머가 있는 것이다. 선의가 빈틈없이 진지한 반면에, 악의는 게릴라적인 웃음을 가지고 있으며 페이소스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포숙아는 적합한 시기를 선택하고 정확하게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악의적인 설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오직 남은 문제는 적합한 시기를 어떻게 선택하는가, 그 타이밍뿐이었다. 그 타이밍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상황의 변화에 대하여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한비자는 제6권 '해로편(解老篇)’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道란 일정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도(道)란, 모든 사물이 그렇게 형성(形成)되고, 그렇게 존재케 하는 모체이다. 그리고 온갖 이치(理)가 머무는 근원이다. 이치(理)란 모든 사물이 이루어지는 절차이며, 도란 만물이 이룩된 근거인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老子)는 '도란 만물을 이치에 따라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다.
사물에는 각각의 이치가 있다. 그것을 거역할 수가 없다. 때문에 이치는 모든 사물을 제약하는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은 제각기 이치를 달리하지만 도(道)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총괄한다.
그러므로 도는 때에 따라서, 구체적인 사물에 따라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도에는 일정불변(一定不變)의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일정불변의 법칙이 없기 때문에 혹은 죽고 혹은 산다. 모든 지능(知能)은 혹은 깊게 혹은 얕게 거기서 배우며 모든 사물은 어떤 것은 피폐되고 되고 어떤 것은 흥하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 > 상황판단의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 3-7 운무도 움직이는 재능 (0) | 2023.03.22 |
---|---|
[한비자] 3-6 상황에 따라 지혜가 생긴다 (0) | 2023.03.21 |
[한비자] 3-4 '화씨의 구슬'이 주는 교훈 (0) | 2023.03.19 |
[한비자] 3-3 양위도 칭찬할 가치가 없는 시대 (1) | 2023.03.18 |
[한비자] 3-2 할 일이 많은 시대를 사는 지혜 (0) | 2023.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