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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상황판단의 지혜

[한비자] 3-7 운무도 움직이는 재능

by 고전 읽기 2023.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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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雲霧)도 움직이는 재능


다른 사람이 이 이론에 이렇게 반박을 제기한다.


“비룡, 등사는 구름이나 안갯속을 나른다. 비룡과 등사의 비상은 구름이나 안개의 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현지재능(賢知才能)을 버리고 완전히 상황에만 맡겨서 천하를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까.


그런 예는 지금까지 본 일이 없다.


구름이나 안개라는 상황이 있더라도 그것을 타고 나를 수 있는 것은 비룡이나 등사에게 우수한 재능이 있기 때문이다. 구름이 아무리 짙게 피어오르더라도 지렁이는 그것을 타지 못한다. 안개가 아무리 깊게 끼었더라도 개미는 그것을 타지 못한다.
짙은 구름과 안개가 있더라도 그것을 타고, 나르고, 놀 수 없는 것은 지렁이나 개미의 재능이 용렬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걸이나 주가 남면(南面~ 옛날에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는 뜻)하여 천하의 왕이 되고, 천자의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천하가 크게 어지러운 것을 막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재능이 용렬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요가 천하를 다스렸다는 그 상황과 걸이 천하를 어지럽혔다는 그 상황 사이에는 어떤 다른 점이 있었는가. 상황이라는 것은 현명한 사람만이 그 상황을 이용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명한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면 천하는 다스려지고, 어리석은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면 천하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本性)에서 보면 현명한 사람은 적고 어리석은 사람은 많다.


더구나 상황의 효용에 의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돕는다면 상황을 이용하여 천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상황을 이용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적어질 것이다.

상황이라는 것은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에게도, 또는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도 편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周書)』에도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말라. 마을에 뛰어들어 사람을 잡아먹으려 할 것이다'라고 쓰여있다. 어리석은 사람이 상황을 이용하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이 되지 않을까.


주와 걸은 높은 대()와 깊은 연못을 만드는데 백성의 힘을 이용하고, 포락(炮烙)의 형(刑)을 만들어 백성의 생명을 빼앗았다. 주와 걸이 이와 같은 포학한 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왕자의 권위라는 날개를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주와 걸이 신분이 낮은 보통 인간이었다면 그런 나쁜 짓을 단 한 가지도 하기 전에 사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상황이라는 것은 호랑이의 마음을 양성하여 난폭한 일을 성취시키는 것이고 그것은 천하의 큰 재해이다.


상황은 잘 다스려지는가 어지러워지는가 와는 본래부터 어떤 확고한 관계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상황에 따라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지능 정도가 너무나 천박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수한 명마(名馬)와 튼튼한 수레가 있더라도 그것을 심부름꾼에게 몰게 하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유명한 마부 왕량(王良)에게 몰게 하면 하루에 천리라도 갈 수 있다. 마차는 같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한쪽은 하루에 천리를 가고 다른 한쪽은 웃음거리가 된다.


이것은 기술의 오묘함과 졸렬함이 두드러지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라를 수레에 비유하고, 상황을 말에 비유하고, 호령을 손잡이 끈으로 비유하고, 형벌을 채찍으로 비유하고, 마부를 요와 순에게 비유한다면 천하는 잘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부를 걸과 주에 비유하면 천하는 어지러워진다. 이것은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현저하게 차이가 나있기 때문이다.


날으는 듯이 마차를 몰고 순식간에 먼 곳까지 가려고 하면서 왕량(王良)에게 마부 일을 맡길 줄 모르고, 이익을 증진시키고 해악(害惡)을 배제하려 하면서 현명한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일을 맡길 줄 모르는 것은 비교도 할 줄 모르는 슬픈 현상이다. 요와 순도 역시 백성을 다스리는 훌륭한 마부인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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