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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상황판단의 지혜

[한비자] 3-8 현인과 우인의 상황 이용법

by 고전 읽기 2023.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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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賢人)과 우인(愚人)의 상황 이용법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반박한다.


“신도(愼到)는 상황에 의존하면 상황내(狀況內)의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도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명한 사람이 나타나주지 않으면 천하는 다스려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잘 못 된 생각이다.

상황이란, 말은 하나이지만 무수히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면 그것에 대하여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논하려는 상황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요와 순이 태어나면서부터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열 명의 걸과 주가 있었더라도 천하를 어지럽히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다스려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걸과 주가 태어나면서부터 높은 자리에 있었다면 열 명의 요와 순이 있더라도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어지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스려지는 상황에 있으면 어지럽게 할 수가 없으며 어지러운 상황에 있으면 다스려지게 할 수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논하는 상황이란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상황을 말하므로 거기는 현명한 사람은 필요치 않다. 왜 그런가는 다음 이야기를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창과 방패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파는 방패가 튼튼하다는 것을 자랑하며 어떤 창으로 찔러도 뚫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창을 자랑하여, 아무리 튼튼한 것이라도 찌르면 뚫린다고 말했다. 이것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이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찌르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창(矛)과 방패(盾)를 파는 사람은 대답하지 못하였다.


관통되지 않는 방패와 찔러 관통되지 않는 것이 없는 창과는 동시에 병존할 수가 없다. 현명한 사람이 천하를 다스린다는 원칙에 의하면, 현명한 사람은 그 자체가 정의(正義)이기 때문에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다. 상황이 천하를 다스린다는 원칙에 의하면 모든 것이 그 상황을 만들어 낸 법률(法律)의 구속을 받고 있으므로 어떤 것이든 구속하게 된다.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 현명한 사람과 어떠한 것이든 구속하는 상황과는 창과 방패의 경우처럼 모순(矛盾)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과 상황은 서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더구나 요·순·걸·주와 같은 인간은 천 세대(千世代)에 한 사람 나타나더라도 너무 많다고 할 정도로 특별한 인간이다. 세상의 보통 군주는 중류(中流)의 재능을 갖추고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여기서 상황에 대하여 설명하고 싶은 것은 이 중류의 군주에 대해서 이다.


이 중류의 군주는 위로는 요·순에 미치지 못하지만 아래로는 걸·주와 같이 되지도 않는다. 법을 지키고 그 상황에 편승하면 다스려지고, 법을 외면하고 상황에 편승 못하면 어지러워진다. 상황을 무시하고, 법을 버린 채 오직 요나 순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면 요나 순이 나타났을 때 세계는 다스려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천 세대 동안 어지럽다가 한 세대 동안만 다스려지는 결과가 될 것이다. 상황에 편승하여 걸이나 주가 나타났다고 가정하면 걸이나 주가 나타났을 때 세계는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천 세대 동안 다스려지다가 한 세대 동안만 어지러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다스려지는 기간이 천이고 어지러운 기간이 1인 경우와, 다스려지는 기간이 1이고 어지러운 기간이 천일 때와는, 마치 준마를 타고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리는 것과 같아서 그 거리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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