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가치가 있는 학문과 예술
단순히 생활설계나 도구(道具)를 제조한다는 일상다반사만이 아니라 조직이나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도 부화미려(浮華美麗)한 허구가 아니고 현실 적인 효용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털어놓고 말한다면 원칙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솔직한 본심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좀 더 에피 소드를 인용하기로 한다.
조(趙)나라의 무령왕(武靈王)이 이자(李疵)를 보내어 중산국(中山國)을 공략할 수 있겠는지를 알아오게 했다. 이자가 돌아와서 보고했다.
“중산국은 공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공격하지 않으면 아마도 제(齊)나 연(燕)이 먼저 공략할 것입니다.”
“어째서 공략할 수 있다는 건가.”
“중산의 군주는 산중의 굴속에 숨어서 사는 은거지사(隱居之士)를 만나기를 좋아합니다. 스스로 마차를 타고 방문하기도 하고, 같은 수레에 태워 와서는 대화의 상대로 삼기도 하는데, 꾀죄죄한 초막에 사는 궁여일항(窮閭 隘巷)의 선비는 열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이고 대등한 자격으로 교제하는 민간인은 백의 단위로 헤일 수가 있습니다.”
“그대가 하는 말대로라면 매우 훌륭한 군주가 아닌가. 어떻게 공략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로 즐겨 은사(隱士)를 칭찬하고 더군다나 정치의 자리에까지 참가시킨다면 전사(戰士)는 싸움에 임해서도 싸울 뜻이 솟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윗자리에 있는 자가 학자를 존중하고 문사(文士)를 존경하여 조정에 들여앉히면 농부는 경작에 힘을 쏟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전사가 싸울 의욕을 잃었다면 병력은 약해집니다. 농부가 경작할 의욕이 없어진다면 국가는 가난해집니다. 그 병력이 적보다 약하고 국내도 가난한데, 그러고도 망하지 않은 예는 여태까지 없습니다. 거병하여 공략해도 좋지 않겠습니까.”
이자가 이렇게 말하자, 무령왕은 즉시 병력을 이끌고 중산을 공략하여 멸망시키고 말았다.
은거하여 혼자서만 학문에 전념하는 사람은, 나라가 평온할 때는 농경에 힘을 기울이려고도 하지 않고, 일단 유사시에도 갑옷을 입고 싸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존경한다면 일반사람들은 농경에 힘을 쏟고 싸움에서 공을 세우려는 의욕을 잃고 말 것이 틀림없다.
한비자는 그렇게 논평한다. 경작도 하지 않고 전쟁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영향을 고려할 때 그 존재 자체가 유해하다는 것이 다. 학문, 예술, 기술 기타 모든 것도 모두 현실적인 효과에 의해서 계측되고 가치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현실적 효용 중시의 사상은 그야말로 현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준비해 놓고 있다.
묵자(墨子)가 나무로 솔개를 만들었다. 3년이나 걸려서 완성했는데 날려보니 하루 만에 부서지고 말았다.
“선생님의 기술은, 나무로 만든 솔개도 날릴 수 있을 정도이군요.”
제자가 이렇게 말하자 묵자는 대답했다.
“나는, 수레(車)의 마구리()를 만든 자의 기술에 도저히 미치지도 못한다. 작은 나무조각으로 만드는데 하루도 걸리지 않지만 삼십 석의 무거운 짐을 끌고 멀리까지 갈 수가 있고, 힘이 강한 데다가 더구나 오랜 세월 동안 사용할 수가 있다. 나는 솔개를 만들었지만 3년이나 걸려서 완성했는데도 날려보니 하루 만에 부서져 버리고 말았다."
혜자(惠子)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묵자는 참으로 현명하다. 수레의 마구리를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훌륭한 기술이며, 나무의 솔개를 만든다는 것은 쓸모없는 기술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기술을 위한 기술, 장난 섞인 비실용적인 기술은 아무리 화려하게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가치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의미가 있는 기술, 혹은 예술이건 학문이건 간에 만약에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묵자가 만든 나무솔개와 같은 것이 아니고 수레의 마구리와 같이 그 어떤 현실에 도움이 되는 기술 혹은 예술 · 학문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현대에도 통용되는 것으로서,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현실이므로 공리주의(功利主義)라는 말을 듣건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을 듣건, 기죽을 필요 없이 효용을 존중한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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