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자가 이익을 보는 체제
한비자는 관리(管理)에 대해서도 효율화를 힘쓰고 있는데 그 관리를 잘못하면 갖가지 분야에서 부분적인 효용의 추구가 시작될 것이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충신과 간신의 구별
대저, 안전하고 우리한 일에는 앞을 다투어 종사하고, 위험하고 해로운 일에서는 재빨리 빠져나간다. 이것이 인간의 정이라는 것이다. 만약 남의 부하가 되어 힘을 다하여 공적을 세우고 지혜를 다하여 충절을 나타내려 하는 자는 그 몸은 불우하고 집안은 가난하며 부자(父子)가 모두 재난을 당한다. 간리(姦利)를 도모하여 윗사람의 눈을 속이고 뇌물을 써서 중역에게 꾸 벅거리는 자는 그 몸은 출세하고 집안은 부해지며 부자가 모두 은혜를 입는다.
이런 식이라면 사람들이 어찌 안전유리한 길을 피하고 위험유해한 길을 택하거나 하겠는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그런 식으로 잘못되어 있으면 서 더구나 윗자리에 있는 자가 부하에게 악질적인 사람이 없이 규율을 잘 지키기를 바란 다할지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한 일이다. 이리하여 부하들은 충성으로써 안전과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충성으로써 윗사람을 모시고 많은 공적을 쌓아 내 한 몸의 안락을 도모하려는 짓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흑백을 가리려는 것과 같은 짓으로서 아무런 희망도 없다. 또 도의에 호소하여 주위를 감화시키고, 정의를 행하여 부귀영화를 쫓지 않고 오직 윗사람을 받들어 내 몸의 안락을 구하려하는 것은,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가 소리의 청탁을 가리려는 것과 같아 더 한층 아무런 희망도 없다. 어떤 방법이건 내 한 몸의 안락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차라리 동료와 공모하여 윗사람의 눈을 속여 나쁜 짓을 해서라도 중역에게 빌붙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이 사람은 반드시 윗사람이 요구하는 정의를 무시하게 될 것이다. 또 많은 부하들도 정직하고 사심(私心)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안락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 반드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청렴결백을 모토로 윗사람을 섬기고 그로써 안락을 구하는 것은 컴퍼스와 자도 없이 네모난 원을 그리려는 것과 같은 것이어서 아무런 희망도 있을 수 없다. 법을 지키고 사적인 파벌을 만들지 않고, 직무를 소중히 하면서 내 몸의 안락을 구한다는 것은 발로써 머리를 그리려는 것과 같아서 더한층 아무런 희망도 있을 수 없다. 아무래도 내 한몸의 안락을 얻을 수 없다면 차라리 법망을 빠져나가 사리(私利)를 도모하고 중역에게 빌붙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한비자는 정직한 자가 손해를 본다는, 관리의 잘못으로 인해 전체의 조화를 흔들리게 하는 부분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말하자면 나쁜 일에 손을 대는 그 심리의 움직임을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적에 의한 평가
옛날 창힐(蒼顔)이 문자를 만들었을 때, 자기만을 위한 것밖에 생각지 않는 것을 사(私)라고 했으며, 사와 반대되는 것을 공(公)이라고 했다. 공과 사가 서로 대립하는 것은 창힐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공과 사의 이익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만저만 모르는 소리가 아 니다. 그렇다면 일개 범인(凡人)으로서 이익을 얻고자 생각한다면 인의(仁 義)를 닦고 문학을 배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인의를 닦으면 신용을 얻는다. 신용을 얻으면 좋은 일을 맡을 수가 있다. 문학을 배우면 이름난 선생이 될 수 있다. 대선생이 되면 유명해진다. 이는 일개 범인으로서는 아주 마음에 드는 얘기다.
이렇게 볼 때 공적이 없어도 좋은 일자리를 맡을 수 있고, 작위가 없어도 유명해지는 것이다.
정치가 이렇게 되면 국가는 혼란에 빠지고 윗자리에 앉은 사람도 반드시 위험을 안게 된다.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양립할 수 없다. 적을 베인 자야말로 상을 받아야 할 터인데, 유가(儒家)가 말하는 자혜(慈惠)의 실행을 높이 평가한다.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자야말로 작록을 받아야 할 터인데도 묵가(墨家)가 말하는 박애(博愛)의 설을 신용한다. 군비를 증강시켜 전쟁에 대비해야 하는데도 느긋한 예복(禮服)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부하게 만드는 일은 농민에게 의존하고 적을 막는 일은 병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도 문학의 선비를 존중한다.
윗사람을 존경하고 법을 지키겠다는 백성을 버리고 유협(遊俠)·자객(刺客) 따위를 길러낸다. 이러한 정책으로는 나라가 다스려지고 병력이 강해질 까닭이 없다. 나라가 평온하다면 유협을 기르고 전쟁이 시작되면 전사를 사용하려고 하는데, 나라가 이익을 부여하고 있는 자는 나라가 필요로 하는 자가 아니고, 나라가 필요로하는 자는 나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그 일을 팽개치고, 도움이 되지도 않는 무용지물이 나날이 늘어간다. 이것이 세상이 혼란해지는 원인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한비자의 처세훈 (웅비의 결단학) > 실리를 얻는 지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5-9 무용과 용에 대하여 (0) | 2023.04.18 |
---|---|
[한비자]5-7 전체의 이익에 위배된다면 (1) | 2023.04.16 |
[한비자]5-6 효율에 대한 한계의 설정 (1) | 2023.04.15 |
[한비자]5-5 실용 가치가 있는 학문과 예술 (0) | 2023.04.14 |
[한비자]5-4 명백락의 제자 교육과 처세술 (0) | 2023.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