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無用)과 용(用)에 대하여
원래 실업(實業)의 효율을 높이려는 것이었는데도 관리를 잘못하면 사적인 이익, 부분적인 효용을 찾아 허업(虛業)을 확대하는 일에만 급급하여 실업을 포기하게 되는 우려를, 한비자는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낡은 단어를, 이를테면 인의와 문학을 노래와 춤으로 바꾸어 놓아 보면 이것은 지금도 통용될 수 있는 지적일 것이다.
가령 조용필이 1년에 수천만 원의 수입을 올렸다는 뉴스를 보면 평생 걸려도 그만큼 벌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은 재능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혹 가능하면 자기도 조용필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역시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노래는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직접적인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허업이므로.
그러나 조용필도 또한 필요한 것이다. 단일한 생산력으로서 조직되어 온 근대인이 얼마 후에는 놀이의 요소의 필요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한비자도 무용의 용이라고 할 수 있는 놀이의 요소를 짜 넣기를 잊지 않고 있다.
현명한 군주는 내전에서 여색을 즐기기는 할지언정 그 말을 들어주지 않으며, 은밀한 부탁도 허락하지 않는다.
한비자는 그렇게 적고 있지만 목적을 명확히 파악하고 그를 위해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만 한다면 여색(女色)을 즐기는 일도 말하자면 필요악으로서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혹은 확대 재생산을 위한 필요불가결한 요소로서 긍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과 사는 양립할 수 있다
송왕(宋王)은 제(齊)와 싸운 다음 승전을 축하하는 뜻으로 무궁(武宮)을 축조했다. 가수(歌手)인 규(癸)가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를 부르자 길 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고 일하는 자들도 피로를 잊었다. 송왕은 그 말을 듣자 규를 불러들여 상을 주었다. 그러자 규가 말했다.
“저의 스승이신 사계(射稽)의 노래는 저보다 훨씬 훌륭하십니다.”
송왕은 사계를 불러들여 노래를 하게 했는데, 길을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고 일을 하는 자들도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길가는 자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일하는 자들도 피로해 보였다. 사계의 노래는 그대만큼 좋지를 않은 것 같구나. 이는 무슨 까닭인가?”
송왕이 묻자 규가 대답했다.
“전하, 일의 진척상황을 살펴보시지요.”
조사해 보니 규가 노래를 불렀을 때는 길이가 사십척 되는 벽이 쌓였으나 사계가 노래를 불렀을 때는 팔십 척이나 되는 벽이 쌓였다. 또 그 튼튼함을 조사해 보니, 규가 노래를 했을 때는 벽을 찌르자 5치나 허물어졌었는데 사계가 노래를 불렀을 때는 벽은 2치밖에 무너지지 않았었다.
한비자는 이 설화를 소개함으로써 겉보기의 효용보다는 실질적인 효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또한 그것은 진정한 효용이란, 효용마저도 초월한, 말하자면 무심한 가운데만 성립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아뭏든 관리가 잘 작동만 하면 공과 사는 양립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 내의 인간인 우리는 놀이의 정신으로 적당히 릴럭스하고, 조용필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 조직을 위해 충성을 맹세하고 그 효율화를 위해 노력한다면 남 나름의 중류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웅비의 결단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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