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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과 현대 처세학 (난세의 인간학)/한비자(韓非子)

1. [한비자] 인간을 불신하는 철학

by 고전 읽기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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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마키아벨리, 동양의 한비자라고 할 만큼 『한비자』란 책은, 철저한 인간불신의 입장에서 리더의 조건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그 내용의 찬반()은 별도로 치고라도, 리더가 된 사람은 일단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삼국지(三國志)』에서 나오는 촉한(蜀漢)의 승상인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유비(劉備)가 죽은 뒤 그의 아들 유선(劉禪)을 보좌하여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사람인데, 유선이 아직 황태자로 있던 시절에 그에게 『한비자』를 읽으라고 몇 번씩 거듭해서 권했다. 공명은 제왕학(帝王學)을 가르치는 텍스트로서『한비자』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새삼스럽게 다시 읽어보아도 확실히 지자(智者)인 공명으로서는 눈독을 들일 만한 책이다.


『한비자』는 조직의 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리더는 어떻게 처세 해야하는가, 스스로 지위를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추구한 책이다.


그와 같은 리더학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중국의 다른 고전과 마찬가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비자』가 이채를 띠는 것은 그 인간관(人間觀)에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움직이고 있는 동기 무엇인가. 애정도 아니고, 동정도 아니고, 의리도 아니고, 인정도 아닌 오직 하나, 이익이다. 인간이란 이익 때문에 움직이는 동물이다. 이것이 『한비자』의 전 권에 일관된 냉철한 인식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나방의 애벌레를 닮았다. 뱀을 보면 누구나 움칠하고 나방의 애벌레를 보면 누구나 소름이 끼친다. 그러나 어부는 손으로 뱀장어를 만지며, 여자는 손으로 누에를 만진다. 즉 이익이 된다면 누구나 용기있는 자가 된다"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수레를 만드는 직공은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 관을 만드는 직공은 모든 사람이 일찍 사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자는 선인(善人)이고 후자를 악인(惡人)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부자가 되지 않으면 수레를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죽는 사람이 없으면 관을 사는 사람이 없기 대문이다.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으면 자기에게 이익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비자』의 기본적인 인식이다.


그의 적나라한 인간에 대한 인식을 처음으로 대하는 사람은 반발심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인간사회의 어떤 진실을 날카롭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관계가 이익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면 군신관계(君臣關係), 즉 톱과 부하의 관계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고, 『한비자』는 생각했다. 부하는 항상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기회만 있으면 톱의 비위를 맞춰가며 자신의 이익을 확대해 가고 틈만 있으면 톱을 걷어차고, 자신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려고 한다. 방심도 틈도 허락할 수 없는 것이 톱의 지위라고 『한비자』는 판단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양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충분히 납득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면 『한비자』류의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톱이 부하를 마음대로 다루고 조직을 정비하며, 자신의 위치를 튼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한비자』 톱이 된 사람은 다음 세 가지 일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법’이다. 공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상을 준다. 실패를 범하면 벌을 준다. 이런 취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반드시 그대로 실행한다.


즉 신상필벌(信賞必罰)의 방침으로 부하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술(). ‘술’이란 ‘법’을 운용하여 부하를 컨트롤하기 위한 비결이라고 해도 좋다. 『한비자』의 설명에 의하면, ‘술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가슴 속에 담아두고, 이것 저것 견주어가며 비밀스럽게 신하를 조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째는 ‘세(). 권세 또는 권한이란 뜻이다. 부하가 톱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그 톱이 부하의 생사여탈(生死與奪)의 권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톱의 지위에 있는 자는 권력을 손에서 떼어놓아서는 안되며, 일단 손에서 놓으면 부하에 대한 억제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흔히 ‘권한의 위임'이란 말을 쓰는데 안이하게 그런 짓을 저지르면 톱으로서의 지위는 이미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의 뜻이다.


『한비자』는 이 법 ·술·세의 세 가지를 기둥으로 하여 톱이 지켜야 할 자리를 해명하고 조직관리와 인간과계에 대처하는 길을 찾고 있다. 확실히 『한비자』의 이와 같은 관점에는 좀 지나치게 극단적인 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수긍이 가는 점도 적지 않다. 과연 전국 난세의 냉엄한 현실과 격투하는 속에서 나온 주장인 만큼 강력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아래에 그 주장을 몇 가지 논점으로 정리하여 하나씩 검토해 보기로 한다.

 

 


출처: 난세의 인간학, 월간 엔터프라이즈, 198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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